가을의 들
가을의 들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3.10.1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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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들이 샛노랗다. 막 추수를 시작한 농부의 얼굴이 밝다. 자식을 바라보듯 흐뭇해 보인다. 봄부터 애써온 시간이 벼 이삭 한 톨 한 톨에, 사과 한 알에 스며있으니 그들에게 가을걷이는 감동이다.

하지만 나는 이때가 가장 싫다. 하나씩 비어가는 들을 보노라면 내 안으로 황량한 모래바람이 분다. 끝내 노란색이 모두 사라진 풍경은 서슬 푸른 추위가 엄습해온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닥칠 겨울의 예고다. 황폐한 허허벌판에서 느껴지는 상실로 우울증을 앓는다.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의 통증이다.

나에게 와 있는 깊은 가을을 거부하고 싶다. 눈은 점점 더 침침해지고 귀는 갈수록 어둑해질 것이다. 아픈 곳이 늘어나고 과거의 시간을 자꾸 지워버린다. 벌써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종일 끙끙거리고 글을 쓰다가도 단어가 입안에서만 맴돌 뿐 깜깜할 때가 있다. 그게 떠올라야만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날이 자꾸 늘어난다.

이제 내가 움켜쥐고 싶어도 술술 빠져나가는 세월이다.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만큼 억척스럽게 찾아오는 상실을 몸으로 느낀다. 망백(望百)이신 시어머니의 그 아픔을 보고 있다. 소리를 투과하지 못하는 청각은 유일한 자식과의 통로가 없어지고 다리의 건강을 잃었으니 종일 갇혀 지내셨다. 하나, 둘 잃는 게 많아지니 요양원에 가는 신세가 되었다.

문자가 어려운 어머니와의 소식이 단절되어 어쩌다 찾아가는 자식들과의 대화는 오류가 생긴다. 어머니의 일방적인 대화로 면회는 끝이 난다. 그때마다 한결같은 소리가 죽었으면 좋은데 목숨이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차라리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다는 말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정신이 또렷하여 누워서 지내야 하는 삶을 받아들이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만하다. 요양원을 다녀올 때마다 늘 마음이 시큰하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내 모습이기도 하므로.

여름의 끝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가을이 우리에게 일침을 놓았다. 그이의 건강 이상은 나에게 독침이 되어 가눌 수가 없다. 인생의 마디마디에 불거지는 시련이 아직 너그럽지 못한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 이 엄청난 상실 앞에서 왜 빈 들이 떠올려졌을까.

2023 광화문 글판의 가을 편을 보았다. “삼천 번을 심고 추수한 후의 가을 들을 보라. 이런 넉넉한 종이가 있나.” 신달자 시인의 가을 들에서 가져온 문안은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가득 채우고 있던 곡식이 사라진 들판의 허전함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들을 얻어 기뻐하는 농부가 있다. 넉넉한 종이로 표현한 시인의 마음을 따라간 빈 들에 가만히 앉아본다.

가을 들에 흘려진 이삭처럼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나를 만난다. 한 번도 아프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살다 가는 사람은 없다. 잃음에는 분명 얻어지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이는 그토록 좋아하던 담배와 술을 끊고 질색을 하던 운동을 즐기는 사람으로 변했다. 이렇게 새롭게 채워가고 있는 모습에 떨리는 희망을 본다.

이제 저 엄숙한 소멸을, 부활을 기다리는 긴 시간을 묵상할 때다. 비록 걸림돌에 넘어졌지만 서로 조금씩 일어서는 중이다. 예서 주저앉지 않고 그 돌을 다시 딛고 일어서면 디딤돌이 되는 게 아닌가. 삶에서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이치인 셈이다.

어느새 너그러운 가을의 들이 내 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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