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의 시간여행
자연으로의 시간여행
  • 이한샘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23.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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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한샘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이한샘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가을바람이 솔솔… 투명해진 초록색 나뭇잎 사이로 붉고 노란 다른 나뭇잎이 떨어지며 색깔을 합해준다. 까치 두 마리가 총총걸음을 걷다가 거대한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갔다 나와 맴돌더니 경주를 하듯 휙~ 하고 함께 날아간다.

두 손으로 사진 모양을 만들고 안을 바라보니 자연스러움이 영화 그 자체다. 이 풍경에 알맞은 음악을 찾아 틀어본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형상화한 쇼팽의 곡, `빗방울 전주곡'(쇼팽 프렐류드 라장조 작품번호 28-15번). A-B-A 형식으로 되어 있는 5분 남짓의 곡. 비 오는 날에만 듣던 이 곡 선율이 지금과 너무 잘 어울린다.

햇빛이 떨어지는 것으로 바꾸어볼까? 햇빛이 떨어져 사람들의 몸에 닿는 모습을 형상화하는 곡, `가을 햇살 전주곡', `광합성 전주곡'….

초록색이 투명해지고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광경, 음악과 꽤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듣는 사람의 상황을 침해하지 않고 자기식대로 조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놔두는' 느낌이다.

쇼팽은 당시 병환이 있던 그에게 넉넉한 존재로 곁에 있어 주었던 조르드 상드라는 연인을 생각하며 작곡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시선과 부정적 평가를 극심하게 당하던 당시 쇼팽은 이 연인을 통해`있는 그대로 놔두는'은총을 경험했던 것일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숲길을 걸으며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햇살을 즐기고 있었더니 어느새 B 부분의 어둡고 칙칙한 연주가 시작. 무겁고 속도가 나질 않는다. 질퍽하고 답답함을 주는 화성을 들으니, 쇼팽의 병환과 가정 사정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는 여린 쇼팽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무거운 느낌을 표현하게 하다니.

쇼팽은 1810년에 태어난 폴란드인으로서 1830년 불합리했던 러시아제국을 대항해 일으킨 봉기에서 폴란드인이 잔혹하게 실패한 모습을 보며 분노했었다. 이와 관련해서 작곡한`혁명'이라는 연습곡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조국의 아픔과 더불어 폐결핵이라는 병환으로 그의 슬픔은 단단하고 강한 망치가 가슴을 때리듯 이 B 부분의 선율을 낳았으리라.

다시! A 부분 재현부로 돌아왔다. 같은 선율이지만 내 생각인지 슬픔과 좌절과 외로움과 절박함이 기쁨과 소망과 섞여진 더 입체적인 음악이 되었다. 가을철 고개 숙인 벼처럼 완숙한 황금빛 연두색이다. 누군가 말하길, 슬픔과 좌절을 극복한 사람들은 세지고 거칠어지거나 반대로 매우 가볍고 자유로워진다고 하던데 쇼팽은 후자였나보다. 그의 마무리 부분은 처음처럼 순수하나 더욱 가볍고 자유로워 하늘로 휙 날아가 버린 까치 두 마리 같다.

단지 5분의 고요한 시간을 가졌을 뿐인데, 하늘과 햇살과 바람의 캔버스 위에 다채로운 가을 나뭇잎과 발랄한 까치들이 주인공 되어 쇼팽의 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5분짜리 영화가 상영된 셈이다.

홀로 이런 시간만 가질 수 있다면 자연과 내면이 만나는 이런 영화는 늘 가능해진다. 그 영화는 오직 자신만 창조할 수 있는 최고의 영화가 되고 상쾌한 깨달음을 주는 성경 구절이 된다.

바쁜 일상 가운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준 쇼팽 선생님께 `5분 햇빛 샤워 전주곡'이라고 제목을 고쳐 갈색 나뭇잎 한 장의 표창장과 함께 하늘로 답장을 날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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