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행방
나비의 행방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3.10.1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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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나비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사흘 전에만 해도 수십 마리가 풀숲을 날고 있었다. 암수가 쌍을 이루기도 하고 각각 날기도 하는 좀체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신비롭고 놀라워 가만히 서서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나비를 찾아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지난 여름방학 때 손주들과 이곳에 왔던 생각이 났다. 녀석들을 데리고 저수지 둘레 길을 한 바퀴 돌고 숲으로 올라갔다. 숲길을 오르던 녀석들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개미행렬을 만난 것이다. 쭈그리고 앉아 개미가 들어가는 돌덩이를 들추던 녀석들이 탄성을 질렀다. 돌덩이 아래로 하얗게 드러나는 개미알과 개미 떼, 아비규환 속 개미들은 순식간에 알을 물고 굴속으로 모두 사라졌다.

다시 길을 가던 녀석들이 이번에는 덤불 위를 날고 있는 제비나비의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했다. 나비의 검은 날개 안쪽으로 금속색 비늘 가루가 신비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손주들을 데리고 산초나무 앞에 섰다.

“제비나비는 향이 강한 산초나무에 알을 낳는단다.”

“왜요?”

“산초잎이 애벌레 먹이거든. 산초 잎을 먹고 자란 애벌레는 저렇게 멋진 나비로 탈바꿈하는 거란다.”

나의 말에 손주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곳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자연을 넉넉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저수지 넓은 둑길 옆으로 무성한 칡넝쿨이 숲을 이루고, 칡넝쿨 사이로 쥐방울덩굴도 자라고 있었다. 꼬리명주나비는 쥐방울덩굴에 알을 낳고, 애벌레는 그 덩굴의 잎을 먹고 자란다.

꼬리명주나비의 행방이 궁금해 사방을 살펴보았다. 둑 아래 농경지와 과수원에서는 농약이 살포되었고, 둑 위로 달리는 자동차가 매연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식물들은 예초기의 칼날에 잘려 나갔다.

이 상황은 얼마 전에 읽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떠 올리게 했다. 카슨은 봄이 왔는데도 새가 울지 않는 봄을 이야기하며 환경을 파괴한 원인으로 살충제 남용을 지적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생태계가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었는지, 살충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무리 미량이라도 몸 안에서는 더 해로운 물질로 바뀌어 태아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다며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었다.

『침묵의 봄』 이후 60년이 흐른 현재, 지금 지구는 레이첼 카슨의 예언대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호주는 뜨거워진 지열로 자연 발화된 산불이 100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위성에도 포착됐다고 하니 그 피해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내 주변도 예외가 아니다. 6월에 내린 탁구공만 한 우박이 농작물을 초토화하더니, 폭우를 동반한 장맛비가 거의 두 달이나 내려 충북에 재앙을 몰고 왔다. 봉사활동으로 수해 현장으로 달려간 나는 방바닥에 쌓인 진흙더미를 걷어내며 환경의 경고에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의 편리를 위해 자행된 자연훼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60년 후 기후는 어떨까. 하루하루 눈앞의 일에 급급하며 살다가도 내 손주들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바빠진다. 쓰레기 분리수거 정도 겨우 하는 나로서는 지금 보다 한 발 나아간 좋은 시스템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팔랑거리며 날던 꼬리명주나비와 손주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위해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덩굴이 잘리고 나비가 사라진 숲길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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