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문월(把酒問月)
파주문월(把酒問月)
  •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 승인 2023.10.1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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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추석이 지났다. 가을은 가을인지라 바람도 볕도 하늘도 달도 사뭇 다르다. `춘조월추석월(春朝月秋夕月)' 봄에는 새벽달이 좋고 가을에는 저녁달이 좋다. 유학(儒學)의 오경(五經)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 나오는 문장이다. 추석(秋夕)은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파주문월(把酒問月) 술잔을 잡고 달에게 묻는다.

두보(杜甫)와 함께 한시(漢詩)의 양대 거성으로 꼽는 자(字)는 태백(太白)이요 호(號)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인 이백(李白)의 시(詩)다. 두보가 시성(詩聖)이라면 이백은 시선(詩仙)이다. 이유가 있다. 시에서 보듯 이백은 달을 사랑했다. 그리고 술을 사랑했다. 달과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부딪치며 마시는 막역한 사이였다. 앉은 자리에서 술 한 말 마시고는 시 백편을 짓기도 한다. 풍류를 벗 삼아 풍류를 노래한 풍류인(風流人)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그의 자(字) 앞에 술의 한자인 주(酒)자를 붙여 주태백(酒太白)이라고도 불렸는데 흔히 술꾼이나 고주망태를 주태배기라 부르는 것이 여기서 유래됐다. 그의 달사랑은 이 나라에도 전해졌다. 우리민요 `달타령'에 나오는 `이태백이 놀던 달아'에 그 이태백이 이 이태백이다. 사랑이 지나쳤을까. 그는 삶이 그러했듯 죽음도 풍류였다. 어느 날 배타고 장강(長江)에 달마중을 나갔다가 강물에 비친 달이 너무 아름다워 달을 건지려 강물에 뛰어 들었다가 사라졌다는 것이 야사(野史)에서 전해지는 그의 마지막이다.

그 시대 대국(大國)에서 유행하는 풍류는 이 땅에서도 유행했다. 달놀이는 주자빠돌이인 선비와 유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 물 좋고 산 좋은 계곡에 터 잡아 팔작지붕 정자 짓고 바람을 노래하고 달을 가지고 논다는 뜻의 음풍농월(吟風弄月)에서 농월 따서 농월정(弄月亭)이라 이름 붙이고는 그곳에서 달이 뜨면 밤새 놀았다. 달빛이 물아래로 흐르면 세월도 흐르고 술잔도 흐르니 정신들도 흐리며 놀았다. 조선땅 선비들은 대대로 상팔자다.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천강에 물이 있으니 천강에 달이 있다.

불가(佛家)의 경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천강에 달이 비쳐져도 하늘 위 달은 하나다. 부처님의 가피는 어둠속에서 어두운 곳을 비추는 달빛과 같다는 의미로 중생들의 소원과 뜻이 있는 곳이라면 시방세계 어디에든 닿는다는 것을 빗대어 쓰는 법문이기도하다. 조선왕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왕실원찰(王室願刹) 경기도 용주사(龍珠寺) 대웅보전(大雄寶殿) 기둥 주련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늘에 달이 뜨면 어디든 비추고 세상 눈 달린 것들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달도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천중월(天中月)은 하늘에 뜬 달이요 산중월(山中月)은 산에서 오르는 달이다. 산이 얕으면 눈에 보이는 하늘은 넓고 산이 높으면 그 하늘은 좁다. 산 높이에 따라 또 보는 시선에 느껴지는 달맛이 다르다. 그러나 이 맛은 초보들의 맛이다. 달맛의 진미(眞味) 중 진미는 수중월(水中月)이다. 물 위에 뜬 달을 보는 것인데 배를 타고 물위에서 봐야 진미다. 강물의 결 거기에 비치는 달빛의 결에 따라 맛이 다르다. 잔잔하면 잔잔한 대로 일렁이면 일렁이는 대로 맛이 다르다. 이백이 장강에 뱃놀이 간 이유이자 장강에 뛰어든 연유다.

비루한 중생이자 선비도 아닌 필자는 풍류도 모르고 달맛도 모른다. 두 손 곱게 모아 둥근달 보며 소원 빌어 본 기억도 멀다. 먼 기억 되짚고 되짚다 기억나는 달빛이 있다. 포대기에 쌓여 엄마 등에 업혀서 올려다보았던 둥근달. 추석이었으리라. 소원이라는 단어가 무언지도 몰랐을 나이 고사리손 포개어 달님께 빌어보았다.

고맙게도 그날 그 소원 들어주었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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