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
  • 박명식 기자
  • 승인 2023.10.10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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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 청문절차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청문회 도중에 자기 마음대로 박차고 나가버린 사례는 김행 후보자가 국회사상 처음이다. 이는 인사청문제도 자체를 대놓고 부정한 행태이자 국민을 철저히 기만한 처사다. 야당측에서는 오죽 어처구니가 없으면 김행랑(김행 줄행랑)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김행 후보자는 자신에게 제기됐던 주식 파킹, 황색 저널리즘 조장, 노동법 위반, 비상식적 재산 증식, 코인 보유 논란 등의 각종 의혹을`가짜 뉴스'라고 반박하면서 청문회에서 다 밝히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정작 청문회가 열리고 야당 의원들로부터 각종 의혹에 대한 집중 질문과 검증자료 요구가 빗발 치자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청문회장에서 도망가 버렸다.

황당한 야당 의원들은 “김행 후보자는 장관이 아니라 어떤 공직도 맡아서는 안 될 사람”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여당 의원들 조차도 “차라리 차관 대행체제로 가더라도 임명은 무리일 듯 싶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사실상 최근의 대한민국 3대 권력기관인 국회의 권위는 땅바닥 수준이다. 정권이 바뀐 뒤부터 국회에서는 국무총리는 물론이고 각 부처 장관들이 국정을 질타하는 의원들에게 오히려 훈계하거나 윽박지르는 모습이 다반사로 이어지고 있다.

김행 후보자 역시도 이번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의혹 제기에 대해“고발하면 되지 않느냐”며 되레 호통을 치는 모습을 보였다. 장관이 되고 싶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국민의 눈과 귀를 의심케 했다.

국회 청문회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국정의 요직을 맡게 될 후보자의 자질과 역량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자리다. 그런데 작금의 국회 청문회는 무기력함이 역력하면서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얼마나 국회가 우습게 보였으면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를 하다 말고 나가버릴까! 참으로 웃픈일(웃기면서도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정권이 바뀐 뒤부터 인사청문회 자리에 앉은 후보자들은 과거처럼 전혀 긴장하는 모습이 없다. 여야 합의 결과와 관계없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장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법 조항 때문이다. 후보자들은 어차피 임명장을 받게 될 테니 대충 버티자는 식이다. 김행 후보자 역시 그런 태도가 자명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버티기 힘들었는지 박차고 일어나서 어디론가 잠적해 버렸다.

지난 정권 때 지금의 김행 후보자처럼 각종 의혹에 휩싸였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당시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그 이후 국정은 마비될 정도로 혼란이 야기됐고 사태는 끝내 조국 장관이 자진 사퇴하고 그의 가족이 감옥살이를 하게 되면서 일단락됐다. 조국 장관 임명 사태는 정권이 바뀔 정도로 국민들에게 호된 심판을 받은 대한민국 정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이번 김행 후보자의 청문회 줄행랑 사건 역시 그냥 간과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김행 후보자는 대통령으로부터 중앙행정집행기관의 수장으로 지명받은 공적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행 후보자는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망각한 채 국회, 즉 국민을 모독하는 반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김행 후보자가 청문회를 박차고 나갔다는 것은 자신에게 집중돼 있는 각종 의혹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검증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깟 국민 검증 안 받고도 장관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자신한 듯하다. 경찰·검찰 조사도 피해 갈 수 있다고 확신한 듯하다. 그렇다면 국민 말고 확실하게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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