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말서
세말서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10.0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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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정부로부터 90분의 시급을 받는 노부부 이야기

남편의 눈은 노년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시각, 청각 장애인이 되었다. 아내는 요양사 자격증을 습득하여 남편을 상대로 국민건강보험 센터로부터 방문 요양 시급을 받는다.

남을 돌보면 하루에 3시간인데 가족이란 이유로 90분이다. 이렇게 사는 어미가 애처로워 보였던지 형제가 상의하기를 첫째 내외는 아버지를 맡고, 둘째 내외는 4박 5일 엄마 여행을 맡았다며 여행을 가자기에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마치고 와 보름이 지났다.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요양사에게서 전화가 온다. 다급한 목소리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보다 종례한 시간이 빨랐단다. 하여 공단에서 직원 관리가 잘못되었다고 복지센터로 감사가 나온다며 돌보는 아내를 부른다. 비행기를 타면 국내나 국외나 환자를 보살핌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천공항에 새벽에 도착하면 오전 중으로 청주 집에 오는 걸 고려해 평상시 새벽 4시 30분 예배드리러 가기 전 핸드폰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센터로 시작을 알리고 6시에 와서 종례했다. 주어진 시간이 90분인지라 오는 날 큰며느리에게 예배 시간 맞추어 모시러 와 시작 모셔다 놓고 종례하라고 부탁했다.

오전 중에 도착했는데 법을 위반했다고, 싸한 마음으로 법이 그렇다니 순응해야 한다며 감사를 받으러 집을 나선다. 다짐하기를 거두절미하고 모든 건 내가 지고 가자. 죄인의 신분으로 요양원에 들어선다. 원장과 요양사에게 욕심이 과해 실수했노라고 머리 숙여 사죄하고는 공단에서 오면 어떤 불이익이 돌아와도 저의 실수라 할 것이고, 말을 돌리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겠다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요양사의 굳어진 얼굴이 조금은 안도의 빛이 보인다. 원장도 고개를 끄덕인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이 둘이 들어온다. 할 말이 용광로같이 이글거리는데도 꾹 삼키고 손자뻘 되는 젊은이에게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런 실수는 두 번 다시 없을 겁니다.” 정중히 사죄한다.

그럼에도 서류 한 장을 내놓으며 본인이 일러주는 말을 친필로 적은 서류를 받아 가야 한다며 불러주는 말을 받아 적으란다.

세말서[細末書]다.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또박또박 받아 적고 나온다.

90분의 시급이 욕심나 저지른 잘못이지만, 돌아오는 내내 마음속에서는 90분을 돌봐도 남은 시간이 얼만데, 도착해 오후에 돌봤다는 증표를 보냈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을 전적 실순데,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여섯 시라 치자 청주 집에 오는 시간을 3시간 잡는다고 해도 남은 시간이 얼만데 전적 시간착온데. 정이 없는 법이 야속해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판결하셨을까. 자식이 5일간 돌본 대가를 청구한 것도 아닌데 세말서를 쓰다니.

자신에게 말을 건다. “누가 누굴 탓해 지혜롭지 못해 실수해 놓고” 라면서도 서러움에 찬 마음으로 걷는데 모이를 주워 먹는 비둘기 한 쌍을 만난다. 자세히 보니 모이를 부리로 찍어 앞에 있는 비둘기 앞에 놓는다. 양보하고 있다. 미물도 제 짝을 저리 보듬거늘 제 식구 장해 급여에 목매다니 90분의 시급이 그리도 탐이 났더냐. 정부에 고마워해야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양심이 소리친다.

풀 속의 이슬처럼 잠시 있다 사라질 허무한 인생인데 욕심낸 자신이 부끄러워 위에 계신 그분을 향해 저 비둘기처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사는 게 자신이라고 자부했는데,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음을 들키고는 겸연쩍어 허탈한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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