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산속에서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10.0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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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속세에 사는 사람들이 속세를 떠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산속에 들어가 사는 것이 세속을 떠나는 것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산속 생활도 얼마든지 세속적일 수 있고, 산 밖에 살아도 세속적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치 않는 사실은 산속은 자연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는 산속 생활을 하며 자연이 곧 극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산속에서(山中)

溪淸白石出 (계청백석출) 개울 물 맑아 흰 돌 드러나고
天寒紅葉稀 (천한홍엽희) 하늘은 차가워 붉은 잎 드물어졌네
山路元無雨 (산로원무우) 산길에 비 내린 것 같지 않은데
空翠濕人衣 (공취습인의) 공중 쪽빛이 사람 옷을 적시네

사람들이 산 밖에서 보면, 산은 언제나 모습이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기 쉽다.

물론 철에 따라 산색이 바뀐다는 것 정도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산속에 기거하는 사람에게는 산은 변화무쌍한 공간이다.

이런 변화를 감수성이 특별나게 예민한 시인이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흐렸던 물이 맑아지자 안 보이던 흰 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씨도 변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뜻하던 것이 어느새 차갑게 바뀌었는데, 이에 따라 붉게 물든 잎들이 거의 다 져버리고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큰 변화이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시인이 다니는 길에 비가 내린 것도 아닌데, 옷이 젖는 일이 발생하였다.

시인의 옷을 적신 것은 알고 보니 공중의 비췻빛이었다.

가을이 되어 하늘이 짙푸러 진 것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시인의 솜씨가 절묘하다.

산속에 기거하다 보면 산은 대단히 변화가 심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무상감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삶에 대해 달관하는 마음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산속의 많은 변화에서 잠자던 감성을 되살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질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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