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행기(2)- 델리, 되는 게 하나도 없었던 하루
인도 기행기(2)- 델리, 되는 게 하나도 없었던 하루
  • 박윤미 수필가
  • 승인 2023.10.0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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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윤미 수필가
박윤미 수필가

 

지난 5월, 제자와 만나는 자리에 책 두 권을 준비했다.

“읽고 싶은 거 하나만 골라 봐.” 그렇게 `타인의 고통'은 떠나고 `곽재구의 포구 기행'이 남았다. `진정한 축제의 시간은 온몸으로 자신을 느끼는 시간이다'라는 작가의 속삭임이 크게 울렸다. 당장 어디든 `낯선 포구'로 떠나고 싶었다.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도 무언가를 버리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중력 상태에 놓여보고 싶었다고 할까? 존재란 어느 공간과 시간 속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온몸으로 자신을 느끼는 시간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간을 제한하는 것일 테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인도에서의 첫 아침, 뜨거운 여름도 하루의 시작은 선선하다. 누군가는 거리를 쓸고 누군가는 일터를 향해 바삐 걸어가고 몇몇은 멈추어 말을 건네고 어디든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꿉뜨 미나르(Qutab Minar)로 가기 위해 메트로를 찾았다.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남자와 여자의 검색 게이트가 다르다는 점은 이색적이지만 붐비고 분주한 아침 출근 풍경은 낯설지 않다. 이 유적은 인도가 13세기에 무슬림에 정복당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무려 72.5m에 달하는 탑이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고 델리에서 봐야 하는 유적 가운데 1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간 보람도 없이 인도 수상이 방문하는 행사가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사진 찍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근처 공원도 너무 후덥지근해 인도국립박물관으로 가기로 했다. 300루피(약 4500원)에 갈 오토릭샤를 구하는데 모두 고개를 젓는 가운데 한 기사가 가겠다고 나섰다. 잘 정비된 도로와 다양한 차종들, 고급 차들을 보며 인도도 상당히 발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교통 체증으로 차가 거의 멈춘 지점이 있었다. 갑자기 어린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다가왔고 그중 한 아이가 내 무릎에 꽃을 올려두었다. 차창이 없는 오토릭샤만이 타깃이 된다. 또 오토릭샤의 구조상, 가장 오른쪽에 앉은 나만의 몫이었다. 어째야 하나, 차마 눈을 마주치기가 어렵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아이들은 어디서 생화를 가져온 걸까? 아이는 오래도록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마침 길이 뚫렸다. 오토릭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20루피를 주먹 안에 쥐고 있었는데 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얼른 손을 밖으로 뻗었다. 백미러로 전력을 다해 달려오는 아이가 보였다. 다행히도 아이는 돈을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곧 차들이 다시 느려졌고 더 많은 아이가 나타났다. 위협적이었다. 나는 일행들에게 곤란한 상황을 만든 것에 미안했지만, 이번 대장 아이는 훨씬 키가 컸고 오래도록 간절하게 굴지도 않았다.

잠시 후 내 손을 톡톡 건드리는 느낌이 나서 돌아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는 정말 작은 아이가 서 있었다. 다섯 살 정도 되었나 싶은 아이는 말할 힘도 없이 하얀 종잇장 같은 표정이다. 내 무릎 위에 놓인 두 손에는 1리터짜리 물병이 있었다. `이거?' 아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답을 하고 어느새 느슨해진 손에서 얼른 페트병을 가지고 가버렸다. 냉장고에 들어있어서 좀 비싸게 30루피에 사서 3분의 1 정도가 남았으니 약 10루피, 150원 정도다. 무더운 날씨에 그 작은 아이의 갈증이 조금이나마 풀렸길 바랄 뿐이다. 돈보다 물이 아이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땀에 절고 지쳐서 숙소에 돌아왔다. 인도 국립박물관에 가서도 인도에 대해 알게 된 건 많지 않은 듯하다. 무엇보다 무더위 때문이기도 하고 언어의 한계도 크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으려면 이곳에 왜 온 것인가. 밖에서 안에서 다른 존재와 충돌할 때 내 존재가 확인된다. 너무도 쉽게 박해지곤 하는 마음, 한껏 초라해지는 한 사람, 부끄러워하지는 않겠다. 담담히 이 시간을 만나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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