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차 여사님
울 엄마 차 여사님
  •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 승인 2023.10.0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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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감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계시는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아침마다 영상 통화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10여 년. 그동안 어머니는 70대에서 80대 후반이 되셨고 나도 교단에서 은퇴하여 새롭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전화를 걸면 어머니는 대부분 금방 받으신다. 그런데 그날은 유독 긴 시간 동안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전화를 받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은근 걱정이 되고 불안해진다. 세월 따라 어머니의 몸이 야위어 가면서 이러한 걱정과 불안은 더 커졌다.

조금 있다가 다시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전화를 끊으려는데 “여보세요?”하면서 어머니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불안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안도감이 들었다.

영상에서 보이는 어머니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물었더니 한참을 깔깔 웃으시다 말씀하셨다. 사연은 이렇다.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리더란다. `아들한테서 온 전화일 테니 어서 받자' 하며 핸드폰을 찾았는데 핸드폰이 보이질 않더란다. 거실로, 안방으로, 다시 주방으로 온 집안을 그렇게 허둥지둥 헤매다가 어느 순간 주머니 속에서 벨이 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단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였다. “나이를 먹으니 내가 이제 이렇구나….”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전화기를 찾아 온 집안을 헤맸다는 얘기가 우습기도 하였지만 또 한편으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계시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슬픈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어쩌랴. 돌이켜보면 이렇게 슬프고도 웃긴 일들이 내게도 일어나고 있으니. 안경을 손에 쥔 채 안경을 찾는가 하면, 휴강이라고 들었으면서도 강의실을 찾아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서기도 한다. 그러니 이제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런 웃픈 이야기를 곡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분위기로 곡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무겁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곡과 함께 유튜브에 올릴 영상은 헤매는 어머니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제자에게 그림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여름방학 동안 `울 엄마 차 여사님'이라는 뮤직비디오를 완성하였다. 작사, 작곡, 노래, 영상 제작, 유튜브 업로드까지 그야말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다.

내가 지은 노래를 유튜브라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들을 수 있게 되니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유튜브에 올리면 당신의 얘기가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것인데 부끄럽지 않겠느냐고 여쭈었더니, 나이 때문에 그런 걸 어쩌겠느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셨다. 오히려 자식이 노래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기뻐하시면서 유튜브를 통해 당신 얘기를 담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즐거워하시며 조회 수까지 살피신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늙은 아들 대학을 가르치려니 힘들기는 하지만 아들 대학 졸업시키려면 더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라며 웃으시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따스해진다.

노랫말에서처럼 삶이란 정작 중요한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줄 모르고 멀리서만 찾는 어리석은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찾으려고 애쓰는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지 않을까? 울 엄마 차 여사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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