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대하여
기다림에 대하여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10.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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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기다림은 삶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살다보면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기다리다 지치기도 하고 기다린 보람을 만끽하기도 합니다.

그 기다림이 있어 살만합니다. 아니 살아집니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나아서 퇴원할 날을, 군에 입대한 장병은 제대할 날을, 영어의 몸이 된 수인은 석방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졸업할 때를, 취직할 때를, 승진할 때를, 부자 될 때를, 성공할 때를 기다리며 삽니다.

엄동설한에는 따뜻한 봄을, 삼복더위에는 시원한 가을을, 가뭄에는 단비를, 장마에는 햇볕을 기다립니다. 전쟁이 끝나기를, 메시아가 오기를,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희원하고 기다립니다.

이렇듯 견뎌내고 노력하면 실현되는 기다림도 있지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다림과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기다림도 있습니다.

아무튼 기다림은 희망이자 갈구입니다. 아니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입니다.

문득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와 진성의 히트가요 `안동역에서'가 뇌리를 스칩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밤새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미당은 그렇게 한 송이 국화꽃도 수많은 기다림 속에서 핀다고 노래했습니다.

소쩍새 울음과 천둥과 먹구름과 무서리를 견뎌야 비로소 개화되듯이 세상에 거저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안동역에서'는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노래입니다.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고.

살다보면 학수고대(鶴首苦待)해도 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도 있고, 성공하지 못하는 과업도 있고, 부질없는 헛된 기다림도 있습니다.

기다림은 나름의 인내와 고통(忍苦)을 수반합니다.

견우와 직녀가 칠월 칠석 날 하루의 만남을 위해 일 년을 견디어내듯이 말입니다.

이렇듯 기다림은 인고 속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콤함이 바로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네 동백 아가씨/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이미자의 히트가요 `동백아가씨' 가사입니다.

동백아가씨의 기다림은 애틋하지만 헛된 기다림입니다. 오지 않을 님을 무작정 기다리는 건 낭비이자 자해이기 때문입니다.

가신님이 돌아오게 수를 쓰거나 더 좋은 사람을 만나 보란 듯이 살아야 옳습니다.

의존형 기다림이 아닌 자립형 기다림이 성숙한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숙성입니다. 명품 포도주처럼 잘 숙성되어야 기다림이 환희로 물듭니다.

그렇습니다. 기다림은 정체가 아닌 끊임없는 성숙과 자기성찰입니다. `긍정적인 사고'의 창시자인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아는 자에게 적절한 시기에 모든 것이 주어진다' 했습니다. 기다림을 고통으로 여기는 이는 불행을 낳고 기다림을 당연시 여기는 이는 행복을 낳습니다.

각설하고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기다렸다가 세상에 나온 우리들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기다림의 본령입니다. 사랑도 출세도 성공도 귀천까지도.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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