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 한판
윷놀이 한판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3.10.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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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오랜만에 식구들로 북적북적한 명절이었다. 그동안 코로나19 탓에 시동생네 가족도 명절에 못 오다가 올 추석에는 예전처럼 동서네 네 식구와 시누이 한 명 아들, 며느리 손녀가 같이 명절을 쇠게 되었다. 지난여름에도 만나기는 했었지만 그새 조카들 두 명이 키도 훌쩍 자라고 말수도 적어졌다. 틈만 나면 두 녀석은 휴대폰 게임에 몰두하고 어리광 부리던 예전의 아이들 모습이 아니었다.

불과 몇 해 전 일이다. 손녀가 더 어릴 땐 조카들이 오면 아이에게 관심도 보이고 귀여워 어쩔 줄을 몰라 했었다.

안아 보기도 하고 아이를 따라다니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기도 했었다. 명절 때나 잠깐 만나게 되지만 그렇게 조금씩 편해지리라 여겼다. 아이들에게 이삼 년은 너무나 먼 거리인가 보았다. 아직도 낯가림이 심한 손녀는 오촌이 되는 남자아이들이 불편해서인지 제 어미 치맛자락만 붙잡고 떨어지지를 않았다.

차례를 지내고 설거지를 마친 후 윷놀이 판을 벌였다. 윷놀이는 주로 설 명절에 많이 하는 놀이다. 우리 고유놀이로 둘이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편을 나누어 여러 사람이 함께하기에도 좋은 놀이다. 지난 정월보름에 성당에서도 윷놀이가 있었다. 평소에 점잖으시던 신자들이나 신부님, 수녀님도 윷놀이 판에서는 마치 천진한 아이들 같은 모습이었다. 윷가락 네 개를 정성스레 던지고 말판을 들여다보며 환호를 지르곤 했다. 모나 윷이 나오면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니 화합을 이루는데 윷놀이가 으뜸이 아닌가 싶다. 평소에 데면데면한 사이도 같은 편이 되어 윷놀이 한판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들이 놀이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하며 응원을 열심히 하지 않던가.

편을 정했다. 나는 손녀와 한편이 되기로 하고, 초등생 조카들 둘이 같은 편을 하기로 했다. 손녀는 어색함을 떨쳐버리진 못했어도 윷가락을 던지고 말판을 놓으며 왁자한 사이 조금씩 놀이에 빠졌다. 조카 녀석도 말판을 놓을 줄이나 알까 싶어 아들이 놓아주려 했는데 초등 6학년 조카아이는 말판을 아주 잘 쓸 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승부 욕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우리 편이 이기자 손녀는 기분이 좋아졌는데 조카 녀석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녀석이 내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큰엄마랑 일대일로 다시 하자는 제의였다. 거기다 그냥 하면 재미가 없으니 지는 사람이 딱밤을 맞기로 하잔다. `오호라 이 녀석 보게나' 끈질긴 요구에 거절할 수가 없어 대신 팔뚝 세대로 정하고 윷판을 다시 펼쳤다. 그래도 내가 지기야 하겠어. 이기면 큰엄마의 넓은 아량을 베풀며 때리는 시늉만 하리라. 마음먹었던 게 무색했다.

뭔 일인지 나는 윷을 달아서 세 번이나 쳤어도 조카 녀석한테 지고 말았다. 녀석은 의기양양해졌다. 있는 힘껏 내 팔뚝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시누이, 시동생, 며느리는 내 걱정이 태산이다. 얼른 때리라고 팔을 내밀어도 이 녀석은 큰엄마 약 올리기 재미에 빠져 장난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왁자한 윷놀이가 끝났다.

예전에는 사촌, 오촌이 한마당 한마을에서 자라고 놀았는데 지금은 명절 때나 만나니 너무나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

이렇듯 활발한 조카를 보니 학교생활에 소외되지나 않을까 염려하던 마음도 가벼워졌다. 명절에 윷놀이 한판이 아이들에게 한 자락 추억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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