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마님들을 고발한다
안방마님들을 고발한다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09.24 17: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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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친구들과 만나면 안방마님들이 당연 최고의 술안주다. 친구들 모두의 마누라들은 독재자이다. 친구 A 와이프는 아침을 안 먹는 게 좋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몇 십 년을 집안 식구 모두가 아침을 못 얻어먹었다. 그 와이프가 요즘 생각이 바뀌어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은 푸짐한 아침을 차려놓고 식구들을 두들겨 깨운다고 한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집안이 난리가 난다고 한다.

친구 B 와이프는 남자는 가끔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12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면 현관 비번을 바꿔놓고 한두시간 안 열어준다고 한다. 물론 전화는 꺼놓고. 한 번은 열이 받아 호텔에서 자고 들어갔더니 그 다음날 죽다가 살아났다고 한다. 그 날도 12시 되기 전에 가야 한다고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집사람은 마님이고 나는 머슴이다. 갈수록 말도 짧아진다. 밥 먹다 말고, 물! 그러면 물을 떠다 줘야 한다. 거기 바로 옆에 물통이 있잖아 손만 뻗으면 닿을 텐데 하고 반항을 하면 당신이 더 가깝잖아하고 조용히 쳐다본다. 내가 반항을 안 해보는 건 아니다. 안방에 가서 내 휴대폰 좀 찾아와. 싫어, 내가 종이야? 그럼, 종이지. 못해. 내가 왜 해야 하는데? 내가 시키면 그냥 하는 거지 이유가 왜 필요해. 그리고는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기에 눌려 휴대폰 찾으러 간다.

전날 과음으로 속이 쓰려 해장국을 끓여 달라고 했다. 식탁에 앉았더니 해장국은 없고 국그릇에 뜨거운 물에 녹차 티백이 담겨 있었다. 이게 뭐야? 녹차국, 해장에 좋을 거 같지 않아? 아니 파, 마늘도 좀 넣고 해서 얼큰해야 국이지 이게 무슨 국이야. 그랬더니 파를 송송 썰어서 티백 녹차 국에 넣어준다. 이제 됐지? 하도 기가 막혀서 그 때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에게 그 사진을 보여줬더니 난리가 났다. 와이프가 센스가 있대나 뭐래나.

그 놈들이 모르는 소리다. 마누라는 센스나 유머감각이 있다기보다는 카리스마가 있다. 카리스마란 뭔가? 구구절절한 말을 하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괜히 주눅이 들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만든다. 짧게 한 마디 하더라도 바로 알아차리고 행동에 옮기고, 설사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알아서 움직이게 만든다. 논리와 합리? 그런 건 거추장스런 사설이다.

우리나라 아줌마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코로나가 성행하던 시기 미국에서 무례한 인간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마켓에 들어왔다. 직원이 나가달라고 했더니 욕을 해대며 난리를 쳤다. 한국의 아줌마 하나가 똑 부러지게 얘기했는데, 여전히 횡포를 부리니 주변에 있던 한국 아줌마들이 모두가 나서서 그 무례한 인간을 닦아세워 쫓아내는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이렇게 극성스럽고, 진취적이고, 겁이 없다.

그 아줌마보다 더 무서운 종족이 있다. 한국의 할머니들이다. 우리 나이 또래 집을 장악하고 있는 할머니들은 아줌마들보다 더 무섭다. 아줌마들의 어머니, 시어머니인 할머니들은 아줌마들을 손아귀에 쥐고 있고 아줌마들은 남편을 휘어잡는다. 당연히 할머니들은 자신의 남편들을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 할머니들은 남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아니 선별적으로 듣는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건 말로 취급을 하지 않는다.

할머니들은 자기가 길을 건너고 싶으면 아무데서나 건넌다. 신호등 색이나 횡단보도 표식, 차가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알아서 피해가야 한다. 할머니들이 이럴 수 있는 건 살만큼 살아서 죽음이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이 무섭지 않은 사람이 남편을 무서워하겠는가. 다만 우스울 따름이지. 전국에서 할머니들에게 시달리는 남편들을 대신해 안방마님들을 고발한다. 우리집 이여사가 이 글을 읽지 않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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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우 2023-10-17 15:27:17
ㅋㅋㅋㅋ 재밌는 글이네요. 깊이가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