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진 빚을 갚을 때
당에 진 빚을 갚을 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09.2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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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만인 그제 단식을 멈췄다. 당 대변인은 `의료진의 심각한 소견과 당 안팎의 잇단 중단 요청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6일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가를 법원 출석을 앞둔 이 대표에겐 더 이상 단식에 허비할 시간도 앞세울 명분도 없었을 터이다. 건강이 나빠진 그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성모병원과 녹색병원 등을 옮겨가며 병상 단식을 강행했다. 유명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보다 하루가 더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고난의 여정은 그가 소망한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다. 철저한 실패작이 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우선 그는 단식을 시작하며 대통령에게 촉구한 사안 중 단 하나도 관철하지 못했다. 애시당초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제로인 요구들이었다.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지만 사과는커녕 대통령실로부터 단식에 대한 위로 한마디 듣지 못했다. 일본 오염수 방류 반대 천명과 전면적인 국정쇄신·개각 등의 요구도 반향없는 메아리에 그쳤다.

이 대표가 비장한 각오를 표명하며 결행한 단식인만큼 비명계의 세를 누그러뜨려 내부 단합의 효과 정도는 거둘 것이라는 예측도 빗나갔다. 당 지도부가 부결을 주문하고 이 대표 본인이 표결 전날 읍소에 가까운 구명 메시지를 냈음에도 불체포 동의안은 가결됐다. 민주당 의원 30여명이 대표의 호소를 외면하고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 2월 이 대표 1차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을 때보다 찬성이 10명이나 늘었다. 내부 결속은커녕 분열의 강도가 높아졌을 뿐이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고 한 석달전 약속을 뒤집음으로써 단식의 명분마저 퇴색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민주당은 최악의 내홍에 빠졌다. 친명계는 `배신자 색출'과 `응분의 조치'를 외치고 비명 쪽은 이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 총사퇴'로 맞서고 있다. 이 대표가 “국민을 믿고 굽힘없이 정진하겠다”는 입장문으로 정면돌파를 선언하자 분당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말까지 나돈다.

이 대표는 성공한 시장과 도지사를 거쳐 대선 후보로 나섰고 국회에 입성해 제1당의 대표 지위를 누리고 있다. 대권 문턱에서 좌절하긴 했지만 정치인의 꿈이라 할만한 기회들을 두루 섭렵했다. 당은 그에게 정권연장 실패의 책임을 묻는 대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시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고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할 당권까지 안겼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가 곧바로 당으로부터 이런 예우와 기회를 선사받은 사례는 정치사에서 찾기 어렵다. `사법 리스크'로 통칭되는 일련의 흠결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가진 제1당의 역량도 면모도 보여주지 못했다.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내내 방탄정당이라는 조롱에 시달렸고 돈봉투, 코인거래 등의 악재가 주기적으로 터졌다. 급기야 현직 당대표가 체포 동의안 가결을 통해 구속될 수도 있는 초유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 대표가 그동안 자신에게 헌신하다시피 한 당에 부채를 갚아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다. 법원의 영장심사에 당당히 응하고 그 결과에 합당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검찰이 자신을 겨냥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한줌의 증거도 없는 정치적 보복'이라고 주장해왔다. 호언한대로 판사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인정받고 복귀하는 것이 그가 수행해야 할 지상과제이다. 이 승부처를 넘지못할 경우 그에겐 상식적 선택만이 남는다. 당이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내분을 딛고 재건의 기치를 올릴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다. 일부 친명 의원들은 벌써부터 `옥중 공천'까지 입에 올리고 있다. 당을 쪼개고 공멸의 길로 가자는 말에 다름아니다. 이 대표의 뜻이 아니길 바란다. 그의 결단을 바라는 이유는 그의 선택이 민주당 뿐 아니라 불통과 퇴행으로 굴절된 한국 정치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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