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길의 바람이고 싶었네
박종길의 바람이고 싶었네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3.09.2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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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순수한 나만의 바람으로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1930년대 말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난 사진가 겸 시인 박종길이 시집 `바람이 되고 싶었네' 를 세상에 내놓다.

그는 어떤 격식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내 안에 쌓인 이야기들을 문밖으로 내놓게 됐다고 했다.

수많은 날을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음미해온 정직한 영상이지만 그에 따른 글들이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처럼 멋대로 뒹굴고 있어 책으로 묶으려 시로 썼다고 한다.

그의 시집 `바람이 되고 싶었네'에는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몰라도 스쳐가는 바람을 보고 있으면 여유롭고 유유자적한 내면을 담았다.

풀잎의 생명에서는 신이 창조한 작은 풀꽃 탄생의 의미를 하나의 생존과 번영 그리고 꼿꼿한 생명력을 과시하는데 초점을 맞춰 소중하고 고귀한 작은 풀꽃의 탄생으로 새겼다.

그런가 하면 새벽달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밤 가로등도 외로운 듯 밤안개 속에 묻혀갈 때 손가락 바위 끝에 초승달이 걸렸다.

어스름 새벽달의 아련함을 어두운 밤길의 조심스러움으로 비유한 말들로 가득 차다.

그리운 날에서는 친구를 떠올려 내 몸에 병이 들어 두렵고 외로울 때 보살펴 준 고마운 친구가 있으니 내 생애 속에서 삶이 헛되지 않았음에 스스로 행복하다는 시인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행복할 때 친구는 많았어도 불행할 때 내 손잡아줄 진실한 한 사람의 친구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친다.

친구라 함은 보통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으로 말하지만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친구란 어려울수록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힘을 북돋아 주는 등 내 삶을 응원해 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주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리라.

또 초당에서 두륜산 휘감아 도는 바람 문살을 스치다가 세파에 여윈 볼을 손길 되어 만져준다는 시인의 시선은 다산초당에 누운 나그네의 심정을 풀어냈다.

다산초당에 머물던 시절을 돌이켜보며 유배로 홀로 지내게 된 다산 정약용의 그때와 시인의 현재를 은유적으로 전하고 있다.

박종길 시인의 느낌과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가 짧고 간결하게 시의 곳곳에 나타난다.

공감각적 심상에 감각 전이법을 잘 품고 있어 읽는 맛도 난다.

그것은 다실에서의 쌉쌀한 맛보다 더 진한 옛 선인들의 정취가 깃든, 넘기지 못한 그리움 앞에서 마음속에 있는 느낌을 언어로 압축해 표현한 문학의 한 갈래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선생님이 글짓기 교실에서 시지는 실력이 친구 중 가장 좋았다고 하는 말씀에 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시인.

그는 1958년 입문한 사진가로 활동하던 1900년대 말 문예운동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여러 매체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어느 누가 길을 걷다가 내 시집의 흩어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다행이리라.”라고.

시인의 말처럼 누군가의 말에 잠시 기대 마음을 전하고 싶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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