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되 기대지 마라
기도하되 기대지 마라
  •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 승인 2023.09.2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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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기도 잘 하는 법 좀 알려 주세요.”

난감한 질문이다. 필자는 종교인도 아니고 더구나 수행자도 아니다. 명찰 순례 다닌다고 절밥 축내며 향 사르고 불상 앞에 굽혔다 피고 다니긴 했어도 무언가를 딱히 빌어 본적은 없었다. 자리(自利)도 없었고 이타(利他)도 없었다. 암기력은 점점 떨어져 아직도 외우지 못한 천수경은 책 펴놓아야 겨우 따라 읊는 얼치기 불자가 답할 수 있는 답도 아니었다.

미처 알지는 못하나 기도에 관해 눈동냥 귀동냥으로 보고 들은 바는 있다. 막내딸 종신서원(終身誓願) 하던 날엔 환희에 넘쳐 모든 게 그분의 은총이라 하시고 당신 남편 상중(喪中)에는 네 외삼촌 천국 가셨다며 눈물 한 방울도 내비치지 않던 우리 큰외숙모는 말씀하셨다.

“모든 게 다 내 탓이라 하고 살았지. 그러고 사니까 맴이 편해지드라. 세상 미운 게 하나 없드라” 신랑얼굴도 못 본채 시집와 유난히도 까탈스런 시어머니 밑에서 오남매 길러내며 큰소리 한 번 담장을 넘은 적 없었다던 외숙모의 기도의 밑바탕에는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숭고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구순 언저리에도 돋보기 없이 성경책을 읽어내는 외숙모는 여전히 맘도 편하셔서 여태 큰 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하시다. 그것은 분명 당신이 믿고 따르는 그 분의 뜻이자 은총이라 나는 믿는다. 집사인 큰아들과 주일이면 교회로 향하는 우리엄마는 권사다. 한때 한 사람을 미워했던 본인을 용서해달라고 미워했던 그 사람의 죄도 용서해 해달라는 것은 그녀의 기도다. 그토록 미워했던 한 사람이 누군지 잘 알기에 굳이 묻지 않는다. 어느 가을 계룡산 갑사 법당에서 인연된 꼬부랑 노보살의 기도는 정신 사나워지기 전에 먼저 간 남편 곁으로 데려가 달라는 바람이었다. 앉아 계신 절방석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던 노보살의 동참해 주기도 그렇다고 모른 체 하기도 어려운 기도였다.

간절한 믿음이 있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마련이거나 부처님의 뜻일 뿐이었다.

기도발이 좋기로 소문난 절집 법당의 불단은 쌀과 초로 산을 이룬다. 초와 연등에는 간절함이 쓰여 있다. 사연은 많고 많아서 세상 모든 걱정거리와 소원은 초와 함께 타들어 간다. 방생에도 중찰불사에도 기와불사에도 개금불사에도 간절함을 담는다. 이루어만 진다면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심산이다. 환자가 아프면 의사는 배부르다. 중생이 아프면 부처는 아픈데 중은 배부르다. 물론 일부 땡중 이야기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受器得利益)

신라시대 승려 의상대사가 중국으로 유학 가서 화엄경(華嚴經)을 공부하고 요약하여 정리한 법성게(法性偈)의 한 구절이다. “하늘에서 보물이 비처럼 내리는데, 중생은 제가 가진 그릇만큼만 받아간다”는 뜻이다. 신령님 전 부처님 전 제아무리 빌고 빌어도 타고난 그릇 이상은 못 받아먹는다. 또 그릇이 제아무리 커도 눈 어두우면 제 몫도 못 찾아먹는다. 모든 결과가 이미 정해졌다는 숙명론적 접근이 아니다. 제 그릇의 크기를 먼저 알라는 가르침이다. 여기서 우보(雨寶)는 재물과 복 뿐만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불가에서는 일체중생이 본래부처다. 다만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장님이라서가 아니라 눈을 감고 있어서다. 먼저 눈을 떠야한다. 그래야 보물도 볼 수 있고 담을 수도 있다. 그릇도 제대로 놓아야한다. 그릇 엎어놓고 빗물 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건 그릇의 크기도 혜안(慧眼)도 아니다. 일단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담든지 넘치든지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서 기도는 일종의 기우제여야 한다. 모두에게 이로운 단비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야한다. 끝으로 법정스님이 생전에 하시던 기도를 두 손 모아 전한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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