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생태계의 위기
한국 문학생태계의 위기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3.09.18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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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K-팝이 세계적 인기를 끌고 K-드라마가 세계 안방을 장악하고 K-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시대가 됐다.

세계 최고의 음악순위인 빌보드에서 당당하게 한국가수들이 이름을 올리고, 아이돌 가수들의 국외 콘서트가 매진 사례로 나타나며 K-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젊은이들이 먼저 알아본 한국문화는 이제 세계 각국의 성인층에게도 확산하며 역동적인 한국의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 하면 전자산업을 떠올렸지만 기술혁신으로 반도체 국가로의 명성을 얻었고, IT산업을 앞세워 K-문화가 정점을 이루며 세계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외세에 눌리고 가난했던 동양의 작은 나라가 세계의 문화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서울은 세계인들이 가보고 싶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며 관광 홍보까지 덤으로 얻고 있다.

이처럼 세계 젊은이들의 선망 대상이 된 K-문화는 한국의 음식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효과도 있었다.

김밥이 미국의 대형상점에서 없어서 못 팔고 있는 것만 봐도 한국 음식 선호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이런 열풍에 힘 입어 문학부문에서도 한국작가들의 번역서가 세계 각국에 출판되고 있다.

언어의 장벽을 뚫고 한국의 정신이 세계인의 가슴을 두드리는 한 권의 책이 된다는 것은 K-문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노래나 영상과 달리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타 국민들에게 관심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K-문화의 파급력이 커지면서 가장 공감하기 어려운 문학분야에도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한국의 다양한 문화가 트렌드화되는 분위기를 한층 더 높이려면 국가 차원의 고도 문화 전략이 모색돼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정부의 2024년도 예산안을 보면 문학부문 예산은 삭감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작가들의 창작욕구를 북돋우는 문학나눔사업이 폐지됐고,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던 아르코 창작기금은 90% 삭감된 채 10%만 유지된다.

그런가 하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독서 관련 굵직한 13개 사업은 2개만 남기고 모두 폐지된다고 한다.

그나마 남은 2개 사업은 독서 관련 시상식이라고 하니 국민 일상 속 실핏줄 같은 모든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114억원 예산 중 12억원 가량만 살려두면서 모든 사업을 위축시키고 있다.

오랫동안 책 읽는 사회를 추구했고 책 권하는 사회를 권장했던 정부의 정책이 무용지물로 전락할 처지가 된 것이다.

지역서점도 마찬가지다. 사라져가는 지역서점을 살리려고 추진한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도 내년엔 전액 삭감됐다.

가뭄에 단비처럼 지원되는 서점마다 특색있는 문화프로그램을 더는 볼 수 없다.

2024년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은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그럼에도 현장의 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작가의 위기, 출판의 위기, 문학생태계의 위기를 떠안고 있다. 예산 삭감은 문학을 시작으로 전반적인 문화예술계로 확산될 조짐이다.

이미 문화예술계 보조금사업에 대해 무조건 30% 삭감하라는 행정 지시가 현장에 전달되면서 불만도 커지고 있다.

문체부는 내년 예산안과 관련해 “2024년 예산안은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K-컬처의 매력을 지속적으로 뿜어내고 더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편성했다”고 했다.

이 말이 신뢰를 얻으려면 예산 삭감이 아니라 증액으로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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