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을 담은 그릇
문화, 삶을 담은 그릇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3.09.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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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노을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어둠이 내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불을 걷어찼는데 이젠 창문을 닫고 이불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초록이 점점 엷어지는 길목,`포럼500의 세계로'의 초대장을 받고 청첩장을 받은 것처럼 사뭇 설렌다. 초대장은 언제 받아도 설레는 걸 보면 난 아직 어른이 아닌듯하다. 그저 세월에 떠밀려 나이란 숫자를 하나, 하나 얹어 어쩌다 어른이 된 것 같다.

불볕더위 앞에서 맥을 못 추던 한여름 어느 날, 그날도 그랬다. 주인의 발뒤꿈치를 깨물 것 같은 번쩍거리는 새 구두와 정장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초대에 나설 채비를 하며 들떠 있는 나, 한더위임에도 초대장을 들고 나서는 발길이 가뿟했다.

`문화는 삶을 담은 그릇이다.'이란 한 줄의 슬로건이 담긴 리플릿은 잔잔한 가슴에 파동을 일으키고 전율이 일게 하였다.

리플릿을 들고 행사장으로 자분자분 걷다 보니 공자 말씀이 동행한다.

공자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멀리서 사람이 찾아오게 하라'하셨다.

정곡을 찌른다. 문학을 한다고 동분서주 뛰어다니면서 무탈하고 순조로운 직선과, 한없이 돌고 도는 곡선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평행선을 달렸다. 아니 제자리걸음 같아 미적거리며 풍작을 기원하는 농부처럼 작문(作文)에 열중이었지만 미완성인 듯 허기가 졌다.

`옆집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다고 남의 글 농사가 어찌 그리도 좋아 보였던지, 충분한 밑거름과 가지치기 그리고 보듬는 관리도 하지 않았음에도 간구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 어깻죽지를 접을 때가 종종 있었다.

당연 탈고한 창작품을 세상 밖으로 내놓을 때면 기대와 염려로 처녀작(處女作)을 발표하는 것처럼 울렁증이 일어 머뭇거리기 일쑤였다.

공자 말씀처럼 글로써 멀리 있는 사람과 연이 되고 서로 마음이 동한다면 무엇을 바라는가. 초대장에 눈을 떼지 못하고 퇴화된 마음을 다잡아본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 것처럼 수채화처럼 맑고 청아하게 유채화처럼 짙은 감성을 쏟아내려 습작을 뒤적거리는 내 모습이 아른거린다.

사부작사부작 적삼 벗는 듯한 소리가 행사장 이곳저곳에서 이어진다.

손끝에 침을 묻혀 리플릿을 넘기는 소리,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음률을 타는 소리는 예술의 혼을 부르는 소리 같다.

누군가는 예술은 사막의 신기루 같다고 했고, 문화가 없는 도시는 도시의 장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 사시사철 문화의 보름달이 떠오르도록 문화를 발전시키겠다고 열변을 토하는 이곳은 00문화원 총회 날이다.

문화는 삶을 담은 그릇이라 했듯 가을이 오는 길목,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이듬해 씨앗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먼발치 들녘에 펼쳐진 풍성함에 배부르다. 풍작은 한 해의 마무리기도 하지만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늘 창작을 갈구하는 예술인의 마중물처럼.

귓전에 맴도는 삶을 담은 그릇 문화, 그날의 열기가 식기도 전의 포럼500의 세계로의 초대장은 신선한 충격으로 어떤 솔루션을 안겨줄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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