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도시 청주' 각인 … 근·현대 역사
`교육도시 청주' 각인 … 근·현대 역사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3.09.13 1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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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보물 프로젝트 청주의 교육유산
⑧ 개교 100년 이상 된 청주의 학교
1896년 주성초 설립 - 청남초 사립으로 첫 개교
당시 초등학교 10곳 - 고등교육기관 청주농고 유일
문화자원 활용 교육도시 명맥 잇는 방안 모색해야
주성초 교실풍경(1954).
주성초 교실풍경(1954).
초창기 청남초 양철지붕 제1교사(1904~1923).
초창기 청남초 양철지붕 제1교사(1904~1923).

 

1970년대 청주는 교육 관련 종사자와 학생이 전체 도시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충북지역만이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도 상경해 청주의 학교에 다닐 정도로 교육 열풍이 불었고, 늘어난 학생 수와 학교 설립으로 `교육도시 청주'의 이미지가 더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청주 도시 풍경을 “까만 교복을 입은 남학생 여학생들이 아침마다 골목 여기저기에서 우르르 몰려나왔다”는 원로 문인 박영수씨의 회고가 당시 청주의 골목 풍경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이처럼 청주에 교육 관련 인구가 많았던 것은 짧은 기간에 형성된 건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서양문명이 유입되면서 `배워야 산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교육기관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교육인구도 늘어나게 된다. 청주는 1890년대 공립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사립학교, 마을학교, 민족학교가 동시다발로 운영되면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교육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격변의 시대임에도 수많은 학교가 세워졌고 또 그렇게 많은 학교가 폐교됐다. 때론 일본의 강압에 의해, 때론 교육주체가 변하거나 자금 부족으로 사라진 학교들은 이젠 오랜 세월 너머에서 희미한 흔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청주농고.
청주농고.

그런데 일제강점과 해방, 전쟁과 가난 같은 숱한 고난에도 오랜 세월을 버텨낸 학교도 있다. 1세기 넘게 청주지역의 교육을 담당하며 개교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11개 학교다. 학교 명칭은 여러 차례 바꿔 달아야 했지만 굳건히 버티고 살아남아 청주교육의 산증인이 되고 있다.

청주 교육 100년 역사의 갈피에서 맨 앞자리는 주성초등학교다. 고종이 관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전국에 공립학교 설립을 추진하면서 청주에도 1896년 9월 주성초등학교가 설립된다. 비록 청주 군수가 교장을 역임하고 관아 건물을 학교로 사용할 정도로 초보적이었지만 세계정세에 대처하려 지역 인재교육에 나섰다는 점에서 충북교육사에 큰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주성초등학교에는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답게 교내에 100년이 넘은 건축물이 주성교육박물관으로 활용되며 학교의 오랜 내력을 품고 있다.

옥산초 개교 100주년 기념탑.
옥산초 개교 100주년 기념탑.

사립학교로 처음 개교한 청남초등학교는 1904년에 건립된다. 청남초등학교는 광남학교의 전신으로 미국 선교사 밀러가 운영하면서 청남학교로 명칭을 바꿨다. 망선루를 제일교회로 이전해 학교를 사용하다가 1938년 영운동으로 학교를 이전해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육활동을 했다. 광복 후 공립학교로 전환되었지만 청주 근대 사립학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문의초등학교는 1909년 개교하면서 옛 청원군에 건립된 첫 공립학교다. 1980년 대청댐 건설로 수몰 지역에 포함되면서 학교는 현재 위치로 이전해 100년 청원 교육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외에도 1906년 덕신학교를 전신으로 건립된 옥산초등학교, 1919년 독립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건립된 미원초등학교, 내수초등학교, 오창초등학교, 강서초등학교, 가덕초등학교, 남이초등학교가 개교 100년 역사를 품고 지금도 인재 교육을 하고 있다.

문의초 아침 조회(1942).
문의초 아침 조회(1942).

 

개교 100년이 넘은 학교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이 청주농업고등학교다. 1911년 충북 도내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중등교육기관으로 청주군 북주내면 원리에서 2년제 도립 청주농업학교로 설립됐다. 이후 1912년 청주군 사주면 사창리에 실습지를 확보하고 교사를 이전하면서 농업교육의 산실 역할을 했다. 학생 신분이었지만 미래 세대의 주역답게 사회 참여도 적극적이었다. 1919년 3·1일 독립만세운동 당시 청주농고 재학생들은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4·19 혁명 때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과감하게 대항하며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다. 청주농업고등학교라는 이름 위에 저항과 학생운동이라는 변화의 주체로써 청주 근·현대 역사에 기록되며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다.

청주관아 건축물을 학교로 사용(1911).
청주관아 건축물을 학교로 사용(1911).

1세기를 지나고 다시 1세기에 돌입한 학교들은 낡고 오래된 교정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고, 시대변화에 맞춰 새로운 학제 교육도 이어가고 있다. 교정에는 개교 100년을 기념하는 기념물이 세워지며 지역사회와 교육공동체로서의 협력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역사성 깊은 교육기관의 뒤를 이어 청주에는 유치원 123개, 초등학교 98개, 중학교 47개, 고등학교 37개, 대학교 10개가 운영되고 있다(2023충북교육행정요람). 하지만 지방 소멸이 심각해지면서 교육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청주의 미래도 교육과 깊은 연관 고리로 이어져 있기에 교육도시의 명맥을 잇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개교 100년 기록을 간직해 온 청주의 11개 학교를 우리 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청주교육의 전통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연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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