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아쉬움
이별의 아쉬움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09.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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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이별이란 말은 만남이 전제도어야 성립되는 말이다.

법화경에 나오는 회자정리(會者定離)도 이 연장 선상에서 나온 말이다. 만남은 언젠가는 이별로 귀결된다.

이별은 시간의 문제일 뿐,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 그 무엇도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이별이 숙명인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특히 정든 것들과 헤어질 때는 짙은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당(唐)의 시인 왕창령(王昌齡)은 정든 지인과 헤어지면서 느낀 아쉬운 감정을 맛깔 나게 그려내고 있다.

이별의 아쉬움(重別李評事)

莫道秋江離別難 (막도추강이별난) 가을 강은 이별하기 어렵다고 말하지 말게
舟船明日是長安 (주선명일시장안) 배는 내일 아침이면 장안으로 향할 것을
吳姬緩舞留君醉 (오희완무유군취) 이곳 아가씨의 느린 춤이 그대를 붙들고 취하게 하리니
隨意靑楓白露寒 (수의청풍백로한) 알아서 푸른 잎엔 단풍 들고 흰 이슬은 차가워질 걸세

시인은 장안으로 떠나는 친구 이평사(李評事)를 배웅하기 위해 강가 여관에 머물고 있다.

친구가 타고 갈 배가 정박한 포구에 와서 헤어짐의 정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제목에 중별(重別)이라고 한 것부터가 이별의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일단 헤어졌는데 아쉬움에 차마 못 떠나고 다시 만났다가 재차 헤어진다니 말이다.

친구는 가을 강이 이별을 어렵게 한다고 말하지만, 이미 이별은 예정되어 있다. 내일이면 친구가 탄 배는 장안으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 강 때문에 이별이 어려운 게 아니고 둘 사이에 쌓인 정이 돈독한 것이다.

어여쁘기로 유명한 오(吳) 지역의 아가씨가 춤을 추는데 이 날 따라 그 춤사위가 느릿느릿하게 느껴진다.

춤이 느린 만큼 시간도 느리게 갈 것이다. 그래야 둘이서 마시는 이별주의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다가 만취한다면 혹여 떠나지 못할 수도 있다. 술 취해 있는 동안 푸른 잎에 단풍이 들고 흰 이슬이 차가운 서리가 되어도 모를 일이다.

피할 수 없는 이별이라면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담담한 이별이 어렵다면 아쉬움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품격 있게 재치 있게 해야만 한다. 그러면 이별의 아쉬움이 멋으로 변할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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