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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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3.09.07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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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가장 인간적인 감성을 표출해준다. 슬픔과 기쁨, 분노와 고통의 근원이다. 때로는 생성의 힘이 되기도 하고 그 힘을 극대화해 생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는 눈물은 썩지 않으니 변하지도 않는다.

결혼 적령기가 넘은 그녀의 아들은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로 타인의 눈길을 끌었다. 겉보기와 달리 산만해지기 시작하면 엉뚱한 행동을 해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이처럼 떼를 쓰기 시작하는 아들의 말을 들어주며 조곤조곤 달래던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부족한 자식이 있으면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좋은 일도, 맛난 음식도 섣부른 위로마저 무슨 소용인가. 주위의 따가운 시선보다도 장견디기 어려운 건 남편이 아들의 장애를 아내 탓으로만 돌리고 외면하는 거란다. 남편이 주는 상처보다 더 아픈 자식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지만, 곁에 있으니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어 살아야 할 이유고 희망이라고 했었다. 그 자식이 눈 깜빡할 사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교통사고였다. 자신보다 며칠 만 먼저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결국 그렇게 떠났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고 한다. 눈이 멀 슬픔이라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다. 초점을 잃은 눈이 깊다. 남들보다 삶의 여정에서 받은 상처가 유난해서인지 짙은 고독감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관습에 얽매어 집 밖을 모르던 어느 날 문득 잃어버린 자아를 찾겠다며 늦은 공부를 시작할 때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웃지도 않고 말수도 적으며 항상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어 상처받은 여자처럼 예사로 보이질 않았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지 못하는 고단한 삶을 눈물 속에 가두고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수심 가득한 표정이 겉으로 나타나는 걸 어쩌지 못했나 보다. 습관처럼 눈물로 말을 대신하기도 했던 것은 실컷 울고 나면 다소나마 숨쉬기가 수월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그녀의 고통에 비하면 한숨짓고 울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부족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주었고 스스로 개척해야 할 삶을 방관한 건 나였다.

생애에서 처음 겪는 끝없는 회한으로 격렬한 울음은 운 것은 아버지와 이별하면서였다. 장례를 치르면서 슬픔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이 내게 와 있는 것처럼 비통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에 빠져 자책하는 내 모습을 아버지가 보신다면 무척 마음이 아프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은 다시 일어설 힘을 부여해 주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더니 세월이 흐르면서 슬픔은 잦아들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그녀의 슬픔을 어찌 내 슬픔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울음 속에서 태어나 만고풍상을 겪으며 눈물 바람으로 살았지만, 눈물의 생성하는 힘으로 일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예고 없는 이별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하염없다. 상실의 고통을 겪는 그녀에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는 차마 하지 못한다. 떠난 자식의 그림자를 좇는 허한 그리움만 먼 하늘의 꽃구름같이 눈물 속에 아슴아슴할 터, 결국 모든 죽음을 배웅하는 건 남아 있는 이들의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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