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행기(1) - 인도에서의 첫 날, 파하르간지
인도 기행기(1) - 인도에서의 첫 날, 파하르간지
  • 박윤미 수필가
  • 승인 2023.09.0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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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윤미 수필가
박윤미 수필가

 

2005년 이래 다시 보는 파하르간지, 어느새 어둠이 내려 불빛이 하나둘 밝혀지는 시간이다. 이곳은 인도 델리에서도 게스트하우스와 식당, 상점 등이 몰려있어 저렴하게 여행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메인 바자르 거리다. 릭샤들, 사람들, 개들, 노점상들이 뒤엉켜 서로 아슬아슬하게 비껴간다. 사람들 소리와 불규칙하게 울려대는 경적, 매연과 향 연기, 이런 무질서가 자연스럽게 계속 흐를 수 있다니.

“아, 내가 인도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아니 이게 인도지, 어쩌지? 최악의 경우 2주 동안 호텔 안에만 있게 될지도 몰라.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아쉽지만 그러지, 뭐.”

어느 5일 장에서 한창 혼잡한 골목을 뚫고 들어간 자동차가 5일 장이 서는 시장의 어느 가운데쯤 있는 호텔 앞에 멈춘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런데 아무리 이렇게 비유를 해보려 해도 그 현장의 상황을 다 표현하기는 어렵다. 복잡한 현장 모습만큼이나 내 머릿속도 혼란스럽다.

어렵게 호텔 체크인 수속을 마치고 방에 짐을 풀고 호텔 안에서 환전도 했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할 동행도 찾았다. 그리고 함께 호텔 밖으로 나왔다. 방금 만난 사이지만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마음이 통한 여자 셋이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의연한 듯이 인도의 거리에 섞여들었다. 중심 도로를 따라 제법 많이 걸어 나갔다. 그런데 욕심내지 말았어야 했다. 조금 가다가 갔던 길로 되돌아왔어야 했다. 로컬 음식들이 있는 왼쪽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시장길 뒤편 길은 곧 주택가였다. 그냥 구경만 할 생각이었고, 가다가 또 한 번 왼쪽으로 꺾어서 골목을 빠져나오면 출발점에 도착하려니 했다.

사람 둘이 스치고 지날 정도의 좁은 골목, 열린 문틈으로 슬쩍 보이는 열악한 살림들, 곳곳에 어슬렁거리는 큰 개들, 삼삼오오 모여 낯선 방문객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요리조리 피해가야 하는 개똥과 오물들... 골목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번번이 막다른 골목이곤 했다. 어느새 호기심, 설렘, 들뜸 이런 것은 싹 사라지고 이 미로에서 얼른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셋은 말없이 발끝만 바라보며 걸음이 빨라졌다.

어찌어찌 골목을 빠져나왔다. 밝은 불빛과 함께 비로소 마음도 환해졌다. 그렇게 다시 마주한 파하르간지 거리는 이제 넓고 화려하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여러 사람이 북적이니 안심이 된다. 그제야 노점에서 흥정도 하고 망고와 바나나를 샀다. 인도에 내딛는 서툰 발걸음, 이제 여행자의 호기가 아니라 상황에 맞는 적절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확인한 호텔은 인도풍의 로비, 인도풍의 침실, 인도풍의 레스토랑으로 반짝반짝한 조명 아래 화려하고 안전하게 보였는데, 막상 그 사진 속 현장에 와서 보니 사진을 보며 상상한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사진이 거짓이 아니라 다만 습도나 열기나 냄새 같은 건 사진에 담기지 않을 뿐이다. 사진으로 보는 세상은 조명, 촬영 각도, 또는 일부만 보여줌으로써 실제와 엄청 다르게 연출할 수 있다. 딱히 특별한 일도 아니다. 내 모습을 찍을 때도 그러지 않는가. 오늘 본 것도 파하르간지의 일부이고, 인도의 다양한 모습 중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옆 침대에 언니는 준비해온 뽀송한 침낭 안으로 쏙 들어갔고 나는 눅눅한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새벽에 집을 나서서 완전히 다른 세계에 누워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모든 곳은 직접 가보면 항상 상상 그 이상이다.

오늘 하루 매 순간이 과제의 연속이었다. 이게 여행의 힘든 점이기도 하고, 맛이기도 하지. 매 순간 넘어야 할 과제를 부여받고, 매 순간 어떻게든 해결해 낼 것이다. 내게 여행은 `산 넘어 산, 넘고 또 넘고'로 표현된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창밖, 어느새 늦도록까지 이어지던 분주함도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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