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다
시작이 반이다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9.0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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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맨발 걷기 열풍이 폭발하자 산책로 어디를 가나 맨발로 걷는 이를 쉽게 볼 수 있다.

저들을 볼 적마다 호기심 많은 내 심장이 너도 도전해 봐야 직성이 풀리잖니. 흠모만 하지 말고 용기를 내 보지 그래 유혹한다.

맨발로 걸으면 근육을 발달시킬뿐더러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영양분과 산소를 세포로 공급하는 데 도움이 된다던데 함께 걷는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산책길에 나오면 조금씩 이야기한다.

가랑비에 옷 젖게 하는 작전이다. 이른 봄에 시작하여 여름이 왔다. 평소보다 걷는 폭을 줄여놓고는 교육대학 운동장으로 와 맨발로 두어 바퀴 걸을 테니 걷기 싫으면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자 함께 걷겠다며 신발과 양말을 벗는다.

모래밭을 디디니 살짝 아프다. 자연스레 어릴 적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어려서 신던 신은 검정 고무신이 아니면 게다(나무 슬리퍼)였지. 신발이 헐렁해 뛰려면 으레 신발을 벗어들고 뛰어도 아프지 않았었는데. 어른들은 고무신 떨어진다고 뛰지 말라 했지만, 신을 신고 뛰면 뜀박질이 느려 벗을 수밖에 없었잖아. 운동회날은 아예 신발을 신지 않고 오는 사내들도 있었지. 지금은 맨발이면 큰일 나는 줄 알지만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

어른들도 밭에 가 김을 매도 맨발, 모내기할 적에도 바지를 둥둥 걷고 맨발로 들어가 모내기했었다. 요즘은 장화가 아니면 신발이 달린 바지를 입어야 물에 들어가는 줄로 안다.

아침에 맛만 보고 온지라 혼자서 오후 8시쯤 2홉짜리 물병에 발 씻을 물과 휴지를 준비해 운동장에 왔다.

세상에 맨발의 중년이 다 모였다. 입이 딱 벌어질 광경이다. 신발을 신은 사람은 쌀에 뉘 찾듯 찾아야 한다.

오고 가는 대화를 들으니 부부, 친구다. 이렇게 건강에 관심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이해가 간다. 차로 출근했다가 종일 책상에 앉았다가 또 차로 퇴근한다. 그러니 운동시간이 이 시간 때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전 건강을 관리하는 저들을 격려해 주고 싶다. 아침에는 나이 든 분들이라 함께 걷기가 좋았는데,` 젊은이들 속에 끼자니 늙은이가 얼마나 더 살려고 나왔냐고 할 것 같은 생각이 살짝 스쳐 간다.

그럼에도 주문 외기를 `내 나이가 어때서 더 건강한 나를 만나기 위해선 하고 싶은 걸 지금 하지 않으면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몰라. 늦었지만, 오늘이 제일 빠르다 생각하고 건전하게 사는 저들과 즐기자. 내 몸에 좋은 변화가 오면 좋겠지만 결과에는 목매지 말자. 소득이 없으면 어때 이렇게 자연과 하나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걷다 보면 삶에 활력소를 잃지 않을걸.'

아침이 되었다. 전에 걷던 길을 뒤로하고 운동장으로 왔다. 싫은 기색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는다. 몇 발짝 걷더니 그때는 돌멩이에 엄지발가락을 자주 부딪쳐 피 났던 이야기를 한다.

나도 옛날에 게다가 안쪽 복숭아뼈를 때려 매우 아팠던 이야기로 길을 만든다. 그때는 피가 나야 아팠는데 지금은 너무 과잉보호한 탓에 피도 안 나는데도 아프다.

걷기를 마치고 발 씻을 물과 휴지를 들고 남편 발을 닦으려고 하는데 손수건에 물을 적셔 비닐봉지에 넣어왔다며 보인다. `시작이 반이다'란 말을 이런 때 사용하는 게 맞지.

고작 두서너 번 걸었을 뿐인데 발 마사지 받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삶을 즐기자. 이게 인생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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