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의 명가
황태의 명가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09.0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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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이름도 없는(無名) 물고기였다. 그러니 먹어서 안 된다는 미신 때문에 먹지도 잡지도 않았다.

`명태', 하지만 이름이 붙은 이후부터는 정말 많이 잡았다고 한다.

이름이 없어 불경한 물고기가 어느 순간 `명태'라는 이름이 생기자 어부들의 그물에 그득그득 올라오는 귀한 물고기로 그 대접이 달라지다니.

이름을 불러 준 순간 나에게로 와 의미가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말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그리도 많이 잡혔으니 보관을 하는 방법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름을 살펴보면 명태의 생물은 생태라 하고 곧바로 얼리면 동태가 되며, 바짝 말리면 북어가 된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 황태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검게 변하면 먹태라 불린다. 명태를 반쯤 말린 것은 코다리, 명태 새끼를 말린 것은 노가리가 된다.

그 외에도 말리는 정도와 잡히는 계절, 또는 잡는 도구에 따라 백태, 흑태, 깡태, 꺽태, 강태, 망태, 조태, 왜태, 막물태, 사태, 오태, 피태라는 이름으로 달라진다. 명태가 이리도 이름이 많은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물고기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실 우리 친정어머니는 비린 것은 입에도 대지 못하는 분이셨지만 유독 명태로 요리하는 `황태탕'과 `동태탕'은 즐겨 드시곤 하셨다.

내가 어릴 때 가난한 살림에 고기를 사 먹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가끔 장날이면 동태를 사다 요리를 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황태탕은 집에서 끓여 먹기 보다는 우리 자식들이 집에 들를 때면 읍내로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사 드렸던 귀한 음식이었다.

황태는 단백질 섭취를 거의 못하시던 어머니에게는 최고의 보신탕이었다. 우리가 어머니를 언제나 모시고 간 집은 `황태 명가'라는 식당이었다. 지금도 그 집은 음성 사람들에게는 맛 집으로 사랑을 받는 소문이 자자한 집이다.

식당의 벽에는 강원도 용대리 덕장에서 황태를 말리는 사진이 걸려 있다.

눈과 바람을 맞으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담금질 끝에 명태가 황태로 변신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거룩함이다. 그러니 손님들은 굳이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황태 명가'가 읍내로 식당을 옮겼지만 우리 어머니가 살아 계시던 10여 년 전에는 한벌리 고개 만남의 광장이라는 넓은 터에 있었다. 온 가족이 `황태 명가'를 가는 날은 어머니의 생신날이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아버지의 생신 상에는 고기라곤 동태탕 뿐이었다. 그나마 언니가 아버지의 생신 상을 차리면서 육고기도 드실 수 있었다.

반면 어머니의 생신상은 온갖 나물로 차려진다. 굳이 장에 가지 않아도 텃밭에서 뜯어온 푸성귀들로 차려진 반찬이지만 어머니는 행복해 하셨다. 어머니는 싫다 하셨지만 우리는 점심으로 언제나 `황태탕'을 대접해 드렸다. 콩나물과 황태채를 넣고 바글바글 끓인 뚝배기의 황태탕을 어머니는 정말 맛있게 드시곤 하셨다.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뜨끈한 황태탕이 있는 그 집 `황태 명가'에 가면 언제나 나는 어머니를 소환하곤 한다.

그나저나 요즘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명태는 대부분 우리나라가 아닌 러시아의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바다에서 노닐던 명태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 바다에서는 살기가 힘들어 북쪽으로 멀리멀리 올라갔으리라. 어디 그뿐인가. 황태 덕장도 조금씩 오르는 기온으로 인해 황태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머잖아 황태가 `금태'로 될까 걱정이다. 부디 내 염려가 괜한 기인지우(杞人之憂)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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