꺽지 잡는 법
꺽지 잡는 법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3.09.0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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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너도나도 피서를 떠나는 계절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못 다닌 한을 풀려고 그러는지 모두 달려나와 고속도로가 빡빡하니 만원입니다. 나야 귀촌하고 여러 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살아서 이제는 어디로 떠나기보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찾아온 이들을 이곳저곳 안내하는 일이 더 좋습니다.

오늘도 문학회에서 알게 된 짱구씨가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는 이곳 출신인데 모처럼 고향에 내려왔다고 아는 친구 몇몇을 불러모읍니다. 소위 번개를 친 것이죠. 차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 딱 좋은 다섯 명, 친구들은 얼음골 식당으로 가서 이 집 대표메뉴인 토종 한방백숙으로 빵빵하게 몸보신도 하고 갈은구곡으로 향합니다.

갈론 마을 끝에서 2~3㎞ 남짓,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서 펼쳐지는 비경 아홉 군데를 갈은구곡이라 하지요. 온갖 모양의 바위들 사이를 옥빛 물이 휘돌아 흐르고 있는 절경입니다.

이곳이 신선들 노닐던 곳이라던가. 하긴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그 유명한 바둑판이 새겨진 곳도 있으니 갈은동문으로 들어가면 이미 신선들의 나라에 들어왔다는 것, 신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명하고는 거리가 먼 옛날의 정취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오지인 갈은동구곡. 지금은 산막이옛길이 생기고 연하협 구름다리도 놓여 많은 사람이 다녀가는 명소로 탈바꿈했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끼리끼리 즐기는 숨겨 놓은 비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한 산길을 빗대어 말하는 구절양장은 이곳 바위틈을 흘러가는 물길에 빗대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짱구씨는 물가에 도착하자마자 풍덩 물속으로 잠수합니다. 너 나 없이 쪼루루 바위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급니다. 이게 얼마 만이냐며 “아, 시원하다.”고 이구동성 연발합니다. 나는 사들고 간 수박을 쪼개어 바위 위에 펼쳐놓습니다.

“해머를 가져왔어야 하는데.”

수박을 하모니카 불 듯 먹으면서 짱구 씨는 못내 아쉬워합니다. 그물도 아니고 삼태기도 아니고 공사장에서나 쓰는 해머를 물가에서 왜 찾는담. 꺽지라는 물고기는 아는지 거듭 묻습니다. 나는 당연히 모르지요. 평야지에서 자란 탓으로 민물고기라면 냇물에서 송사리 두어 마리 잡아 본 기억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 천렵도 안 해 보았겠네?”

물고기를 잡고 다슬기도 잡고 양은 솥을 걸어 매운탕이며 수제비를 해 먹던 추억까지 소환하는 이들 앞에서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꺽지도 모른다니, 그럼 임꺽정이 왜 꺽정인 것도 당연히 모르겠네?”

짱구씨는 임꺽정이 화살을 피해 잘도 숨어다니는 것이 꼭 꺽지를 닮았다 해서 꺽지 꺽지 하다가 꺽정이 되었다고 알려줍니다. 아니면 말고 식 아닌가요? 하긴 꺽정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다람쥐처럼 재빠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물고기 꺽지와 상관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긴 임꺽정의 작가가 홍명희, 괴산사람이니 어쩌면 꺽지와 꺽정은 연리지 같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짱구씨가 신이 나서 꺽지 잡는 법을 알려줍니다. 해머로 물속의 바윗돌을 탕! 사정없이 내려치기만 하면 바위 밑에 사는 꺽지들이 놀라 둥둥 떠오른다나요?

“거짓말!”

“아니여, 바위 밑에서 이몽사몽하는데 해머를 내려쳐 봐, 기절초풍하지 않겠어?”

예쁜 아씨들은 그저 양동이에 주워담기만 하면 된다네요.

짱구씨 왈, 짧은 치마 입은 사람들이면 꺽지들이 너도나도 바쁘게 떠오른다나요?

꺽지 잡기가 이렇게 쉽고 재미있을 줄 몰랐어요. 천렵하는데 나도 끼워주세요. 토끼와 발맞추는 산골 사람들의 여름나기가 처음으로 부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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