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것들에 대한 추억
맛있는 것들에 대한 추억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09.0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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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느티나무 옆의 담벼락에 붙어 서서 “라면땅 한 봉지요.” 하고 동전을 던지면 과자 한 봉지가 훌러덩 담을 넘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크림빵이요.” 하면 크림빵이 넘어오고 여름철엔 아이스크림을 담은 봉지가 담을 타고 넘나들었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산 군것질거리를 느티나무 옆 벤치에 펴고 앉아 조잘대며 쪼아 먹다 보면 금세 수업시작 종이 울렸다. 40년도 더 된 아득히 먼 여고시절 이야기이다.

교문 앞 구멍가게에서는 뻥튀기를 튀겨 팔았다. 시험기간이면 뻥튀기 스무개가 담긴 봉지를 꿰차고 앉아 공부했다. 뻥튀기를 다 먹으면 가방을 싸들고 집으로 갔던 걸 보면 시험공부를 핑계로 뻥튀기만 사 먹었던 게 분명하다. 뻥튀기 스무개를 다 먹고도 집에 오면 어묵 넣고 끓인 김치찌개에 밥 한 공기를 거뜬히 해치웠다. 그래도 속 부글거림 하나 없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학교 앞 먹거리는 무를 채 쳐서 넣어 만든 칼국수 집 만두였다. 칼국수 한 그릇으로는 모자라 만두를 꼭 추가로 시켜 먹었는데 무의 달큰함이 고기 육즙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마성의 맛을 냈다.

보충수업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칼국수와 만두를 시켜 먹다가 선생님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가게 안방의 농 뒤에 숨어 있었던 일은 죽어서도 못 잊을 추억이 되었다. 그때 봐둔 아저씨의 만두 빚는 모습을 시댁에서 그대로 재현했다가 솜씨 좋은 새댁이란 소리를 오래도록 들었다.

그 시절엔 매운 쫄면이 유행했다. 어느 집 쫄면이 더 매운가에 따라 맛의 승패가 결정될 정도였다.

교문을 나와 삼일공원 쪽으로 올라가면 유리문에 붙인 메뉴판 글씨가 제멋대로 벗겨진 허름한 가게가 하나 나온다. 높은 문턱이 손님들 발길에 다 달은, 매우면서도 맛있는 쫄면을 파는 요즘 말로 쫄면 맛집이다. 쫄면 한 그릇에 매운맛을 잡아 줄 야채 고로케를 추가해서 먹으면 어쭙잖은 스트레스는 명함도 못 내밀고 녹아내렸다.

코끼리 허벅지 같은 다리에 볼이 터질 것 같은 여고생을 보고 주변에선 다이어트를 하라고 성화였지만 그 맛있는 먹거리들을 포기할 만큼 몸매가 중요하게 생각되진 않았다. 덕분에 달달한 로맨스 한 번 없는 굴욕적인 여고시절을 보내야 했지만 말이다.

지난 주말엔 맨발걷기에 좋은 황톳길이 있다기에 맨발걷기 체험도 할 겸 올케와 대전 계족산을 찾았다. 나무그늘 밑을 쉬엄쉬엄 걸었는데도 막바지 더위 때문에 등줄기에 땀이 흥건했다. 땀도 식힐 겸 잠시 쉬는데 올케가 친구에게 얻었다며 뽀빠이 과자를 내놓았다. 여고시절 많이 사 먹었던 라면땅과 비슷해서 반가워하니 올케는 빵을 실컷 먹고 싶어서 빵공장에 들어갔던 옛 이야기를 해주었다.

쉬는 시간이면 반장이 양동이에 따다 놓은 우유와 함께 갓 구워 나온 빵을 먹었다고 했다. 제일 맛있는 빵을 먹는 사람은 빵공장 사람이라며 빵 먹는 재미로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다고 했다.

그때의 빵공장은 인심도 후했다며 이젠 먹으라고 줘도 소화를 제대로 시킬 수 없다는 신세 한탄의 말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건강에 해롭다는 음식만을 골라 먹는 듯한 딸들에게 제법 많은 잔소리를 한다. 때가 되면 저희들이 다 알아서 관리할 터인데 말이다. 좋아하는 믹스커피도 끊고 밥 밀어놓고 먹던 밀가루 음식도 끊은 나처럼 말이다. 꼭 해롭기만 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언젠간 그리운 추억의 음식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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