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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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3.09.0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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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다시 여름이 뉘엿뉘엿 지고 있다. 처서가 지나고 들리는 풀벌레 소리는 우렁차다. 지나간 여름이 덥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나름 일도 열심히 했고 소중한 해외답사도 다녀왔으며 엄마는 조금씩 스러져가고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지만 그녀를 위해 이것저것 만들어 줄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며 만끽했다. 나는 욕심이 별로 없다. 타인에게 폐만 되지 않도록 살자며 아이들과 늘 얘기한다. 재물에도 미련이 없고 관계나 일에도 크게 성취욕구는 없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고 나서는 혼자 애가 끓는다. 제발 한 발자국이라도 걷기를, 팔 한번이라도 휘두르기를, 혼자서 애쓰고 힘써 앉아보기를, 그래서 다리를 침대 난간으로 옮겨 보기를 간절히 욕심낸다. 그러다 보면 화가 난다.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아침마다 혼자만 으르렁 거리고 있다. 정작 돌보는 아빠도 돌봄을 받는 엄마도 그럭저럭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아빤 엄마의 수족이 되어 주고 엄만 존재만으로도 아빠 전부가 된다.

객관적 시선으로 본다면 자랑할 만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가족이 보기엔 그저 답답하다. 내가 바라는 것이 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소한 일이라고 부모님께 잔소리 중이다. 엄마 혼자 다리를 올리고 그걸 지켜보라는 나의 주문은 결과적으로 더 아프기만 할 뿐이었다. 엄마 혼자 힘들게 신체를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아빠는 가슴이 무너진다고 한다. 마음이 아파 볼 수 없기에 아빠가 대신 다 해준다는 것이다. 이제는 두 분의 의견을 받들기로 하여 더 이상 강요도 채근도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작가가 쓰고 그린 작품 <두 사람>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함께여서 더 쉽고 함께여서 더 어렵습니다”로 정의한다. 또한 두 사람은 열쇠와 자물쇠 같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드넓은 바다 위 두 섬처럼 함께 살며 함께 태풍도 맞고 해질녘 노을에 같이 물들기도 하지만 모양은 서로 달라서 자기만의 것이 있다고도 말한다. 부부에 관해 여러 비유로 이어지는 작품은 “따로 또 같이” 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결국 인간은 혼자서는 완성되지 못하기에 부부의 연대는 사랑보다는 동지애로 열매를 맺는가보다. 자라면서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들은 늘 좋았다. 꽃을 사갖고 오는 아빠를 타박하지만 수줍게 꽃을 만지작 거리는 엄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빠에겐 사랑스러운 존재다. 지금도 힘든 일이 있으면 “아빠한테 시켜” 한다. 그럼 나는 “엄마! 엄마 남편 말야 낼모레면 팔순이다. 이제 그만 좀 부려 먹으시죠” 라며 놀린다.

누군가에게 한없는 믿음의 바위가 되어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끝까지 사랑 받는 것, 개별적인 두 존재가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만나 때로는 자물쇠와 열쇠처럼, 또는 밤과 낮처럼 살아가는 게 결혼의 노을이 아닌가.

반드시 부부관계만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결혼이든 아니든 모든 삶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또 나의 헌신으로 세상은 정교해지고 그만큼 아름다워지기도 한다. 젊을 때는 엄마가 아빠와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면 지금은 자기 차례라고 말한다. 아이 셋 낳고 집안 건사하고 여태 살았으니 이제는 자기가 엄마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낭만파 아빠는 오늘도 내가 엄마에게 혹시 타박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 미리 연막을 치기도 한다.

“여보, 경은이년이 뭘 몰라, 당신이 이해해” 하며 머리를 빗겨주신다.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다. 나는 이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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