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원과 천원
천만원과 천원
  • 박경전 원불교 청주 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3.08.3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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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 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 상당교당 교무

 

김씨와 박씨는 친구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으니 벌써 10년 지기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김씨는 사업을 시작했고 박씨는 중소기업 회사에 다녔다. 둘은 여전히 자주 만났고 서로가 친구인 것이 참 좋았다. 김씨의 사업이 위기를 맞았다. 김씨는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렸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김씨의 처지를 알고 있던 박씨는 그동안 월급으로 모은 천만원을 빌려줬다. 김씨의 사업은 망했다. 김씨는 미안한 마음에 박씨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 꼭 돈을 갚겠다는 말을 전하려 몇 번 연락을 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돈을 갚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하니 연락을 하는 자체가 미안했다. 김씨는 부단히 돈을 벌려고 애를 썼지만 언제나 푼돈이었고 그 돈은 김씨의 주머니에 쌓이지 못했다. 언제나 더 급하게 돈을 써야 할 곳이 너무 많았다. 박씨는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김씨가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김씨가 박씨의 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을 독촉했지만 언제나 힘들다는 대답과 꼭 갚겠다는 말 뿐이었다. 박씨가 돈이 급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박씨의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보이는 김씨가 괘씸했다. 돈을 빌려준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김씨와 박씨는 이제 만나지 않는다. 김씨는 박씨에게 미안했고 박씨는 김씨가 괘씸했다. 이젠 서로가 과연 친구인지 확신이 서지 않게 되었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누구라도 겪었을 이야기이다. 원불교의 보통급 십계문에는`연고없이 심교간 금전을 여수(與受)하지 말며'라는 조항이 있다. 원불교의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는 왜 친한 사이의 사람끼리 돈을 주고받지 말라고 했을까?

우리가 쉽게 무상(無相)의 마음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씨가 김씨에게 돈을 빌려준 이유는 김씨가 안쓰러웠고 김씨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에는 잘못된 점이 없다. 타인을 도우려 하는 마음은 귀하고 참된 마음이다. 하지만 그 마음에 상(相)이 생겨 버렸다. `내가 이렇게 널 도와줬는데 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라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돈을 빌려줬다는 상이 언제나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건 사채업자의 마음이다. 그저 처음의 도와주려는 순수한 마음만 있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설령 그 마음이 희미해지더라도 상(相)이 없다면 문제가 없다.

만약 그 금액이 천원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박씨가 돈을 빌려주었지만, 빌려주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상(相)없는 마음이다. 천원과 천만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려면 천원처럼 생각할 수 있는 돈 만큼만 빌려 주어라.

필자가 좋아하는 원불교의 성가 하나를 소개한다.

78장 공부와 사업중에 1. 공부와 사업중에 가장 큰 고비 나마저 놓아버린 상없는 세계 아 아 이 고개를 넘어서며는 거기가 해탈이요 피안이라네. 2. 모든 선업 힘을 다해 닦아 놓고도 티끌만한 상이라도 맘에 머물면 한 점 티가 맑은 동자 어지럽히듯 도리어 삼독의 씨 되기 쉬운 것. 3. 경전에 간곡히 이르신 말씀 항하사 모래 수의 칠보 보시도 상 없는 법 닦음만은 못하다시고 마지막엔 법 마저도 놓으라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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