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을 앞둔 시간
작별을 앞둔 시간
  • 연서진 시인
  • 승인 2023.08.3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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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연서진 시인
연서진 시인

 

큰아들이 영국에 있는 회사로 가게 되었다.

몇 년 생각하고 준비한 터라 언젠가 가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합격했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 복잡했다.

떠나보내는 아쉬움도 있는 반면에 훨훨 마음껏 날아가 제 뜻을 펼치기를 소망하는 마음도 있다.

비자 받으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아들 방의 가구들도 중고로 팔거나 버렸다.

비좁던 방이 넓어지는 것만큼 넓어진 공간처럼 나의 마음도 보내는 여유로 비우고 싶다. 새로운 꿈을 향해 비상할 아이에게 아픈 어미가 혹여라도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먼 곳으로 가면 일 년에 한 번은 올 수 있으려나. 이제 너를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한 열 번쯤?`

정적이 흐른다. 나도 저도 부러 외면했는지 모르겠다. 벌써 이별한 듯한 마음에 울컥했다.

“엄마가 아플 때 가서 정말 죄송해요.”

젖어드는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났다. 믿어 주고 응원해 주는 가족이 있으니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아이에게 내가 뭘 하는지 싶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큰아이의 출발을 축하하기도 전에 나의 몸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암울했다.

암이란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많은 일을 겪으며 우리 가족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특히 오랜 기간 대화가 단절된 남편과 큰아이는 어둠을 헤치는 과정에 서로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는 더욱 단단 해지는 계기가 됐다.

요즘은 수시로 걷고 있다. 습관처럼 자주 걷다 보니 지치지 않고 체력이 보강되는 것이 느껴진다. 아이에게 점점 좋아지는 나를 보여주고 싶다. 멀리서 걱정하지 않도록 멀찍이 뒤로 물러나 끝까지 응원하고 있으니 꿈을 향해 자유롭게 나아가라고… .

아들과 나는 아무런 준비하지 않은 채 우리는 제약 없는 자유를 즐기기로 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는 것도 좋아 목적 없이 출발했다. 쉬엄쉬엄 가다 보니 문경이다. 대야산 휴양림이 보인다.

숲길과 계곡으로 길게 이은 길을 따라 걸었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물가에 앉아 발을 담갔다. 여름 끝자락이 아쉬운지 매미가 죽을 듯이 울어대고 있다. 마치 아이와의 작별을 앞에 둔 내 마음과도 같다. 매미가 가장 잘하는 울음소리로 작별을 기다린다면, 나는 아이와의 행복한 시간을 만들며 작별을 기다린다.

손잡고 숲길을 걸었다. 땀으로 젖은 손이 불편한 듯 슬며시 빼는 아들의 손가락 하나를 잡고 “아들아, 이젠 잡을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짓궂은 표정으로 잡은 손에 힘을 꾹 주었다.

감정에 충실해 있는 지금, 열기 섞인 뜨거운 바람마저 주위를 다정히 맴돌고 있다.

그동안 익숙함이란 늪에 빠져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는지,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는지 여행을 빌미 삼아 놓친 것을 찾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문득 생각날 그립고 그리울 이 순간이 행복하다.

아이가 도착할 시간이다. 얼마 남지 않는 시간에 마음이 조급하다. 영국에 가기 전에 맛있는 음식을 해 줘야겠다. 오랜만에 가족 모두 저녁 식탁에 앉았다. 서로에 오롯이 기울인 우리의 이야기는 식탁 위 뚝배기 된장찌개처럼 구수하게 이어진다. 어느 때보다 평화롭다. 큰아이도, 첫 발령을 받은 작은 아이도,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눈다. 우리 네 식구가 모여 함께 밥을 먹은 지가 언제였을까.

치열한 삶의 전장으로 떠날 아들에게 부탁한다.

슬기로움이 단단한 동체 만들고 고난에 지치지 않는 강인한 프로펠러를 돌리기를, 힘차고 멋진 비상을 시작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기를 바란다. 의지할 것 없는 타국에서 옥죄이는 삶의 더께를 지혜롭게 떨치고 더 높이 좀 더 멀리 비행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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