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씨들의 같은 아픔 다른 느낌
`베'씨들의 같은 아픔 다른 느낌
  • 이한샘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23.08.3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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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샘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빠~! 뺨 바바 밤~ 라디오에서 베를리오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몇 년 전 수업 시간에 `베를리오즈'와 `베토벤'의 두 작품을 비교하여 들려주던 때가 생생하게 남아 추억에 잠겨 본다.

“베를리오즈…? 오즈의 마법사인가요? 선생님 근데, 이 음악 좀 무서워요!!” 음악 수업 시간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을 들려주면 나타나는 학생들의 리액션. 왜 이 곡의 4악장에는 무시무시한 기분이 드는 걸까.

그는 파리 공연에서 만난 여배우 `스미스슨'이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어 끊임없는 구애를 하였다. 당시 무명 작곡가였던 베를리오즈는 지속적으로 거절을 당했고 그 거절의 아픔을 가지고 상상의 혼을 불어넣어 이 `환상 교향곡'을 썼다.

그는 여인을 상징하는 고정된 선율(고정악상)을 만들어 곡 중간중간에 계속 등장시켜 작품 속에서 축제(1악장), 마을(2악장), 무도회(3악장)에서 자신과 그녀의 아름다운 만남의 이야기로 상상의 무도회를 연다. 그러더니 4악장에서 이 선율을 단두대로 끌고 간다. 자극적인 관악기의 행진, 무거운 리듬, 여인을 상징하는 선율이 번갈아가며 섞여 엄청난 소음의 소용돌이를 내며 단두대로의 행진하더니 여인(선율)을 죽여버린다.

자신을 거절한 여인을 작품 속에서 죽이고 속 시원한 결말을 노래하듯, 승리의 팡파르로 곡은 맺어진다. 섬세한 상징과 현란한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복수의 에너지를 표현한 `기가 막히게 재능 있는' 음악가다.

다음은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

단두대에서의 행진을 듣고 나서 베토벤의 곡을 들려주니 학생들은 “듣기 좋아요, 기분이 정리되네요”라고 얼씨구를 넣어준다. 합창교향곡 4악장. 이 작품을 쓸 때가 베토벤에게는 인생의 거의 마지막이며 귀가 아예 들리지 않았을 때의 작품이고 평생 가난, 거절, 고독, 외로움 속에 몸부림치며 살아온 자국이 그가 작곡한 노트, 유서에 남겨져 있음을 보여주며 이야기해 주었다. 땡그란 눈으로 바라보는 학생들 눈빛이 마치 스스로의 아픔들도 반영하여 듣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베토벤이 죽기 전에 이 작품 1, 2, 3악장에서 생의 기쁨, 슬픔, 고통, 외로움, 분노, 방황 등의 메시지를 옴니버스처럼 넣어놓았어. 마치 죽기 전 파노라마를 보듯이 말이야.” “그러더니 맨 마지막에 나오는 선율이 이 선율이란다”라며 환희의 송가를 들려주었다. `미미 파솔 솔파 미레 도도 레미 미~ 레레.' 많이 들어본 학생들이 따라 부르기도 하며 아는 척이다. 가사에는 그가 받았던 상처에 대한 한풀이나 복수가 아닌 모든 이들에 대한 화해, 용서, 내려놓음, 선, 조물주, 평화의 메시지로 도배되어 있다.

어떤 학생은 “와~ 이 작곡가는 미쳤네요”라며 요즘 아이들의 극찬의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정말이지 듣는 사람 마음을 깊고 무겁게 부드럽게 만져 놓는 `미친 음악가'다.

두 작곡가의 열정의 무대는 전혀 다른 피날레로 장식이 된다. 각각 본인에게는 비슷한 무게의 어려움과 인생의 숙제가 놓여 있었겠으나 전혀 다른 색채의 대조적인 결말. 집착과 포기, 복수와 용서, 화려한 뽐냄과 단순한 내려놓음.

같은 무게의 인생 스토리에서 나는 지금 몇 악장을 지나고 있으며 어떤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음악수업 시간엔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할까 미처 말하지 못했던 이 독백들을 이곳에 풀어놓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시간'의 연주 속에서 다시 한 번,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소매를 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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