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같지 않은 이유
이유 같지 않은 이유
  • 박명식 기자
  • 승인 2023.08.29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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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앞으로는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진 일제강점기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볼 수 없게 될지 모르겠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에 세워놓은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이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흉상이 철거될 위기에 처한 독립전쟁 영웅은 여천 홍범도, 백야 김좌진, 백산 지청천, 철기 이범석 장군이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독립군이자 봉오동 전투의 영웅이다. 김좌진 장군은 그 유명한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독립군이다. 지청천 장군은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광복군 총사령부 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군이고 이범석 장군도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군이다. 당초에는 지금의 육군사관학교 전신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흉상도 철거 이전 계획에 포함됐지만 거센 반발 탓이었는지 이 선생의 흉상만은 육사 교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계획으로 수정됐다.

이 다섯 영웅들의 흉상은 우리 군 장병이 훈련으로 사용한 실탄 탄피 300㎏을 녹여 제작해 지난 2018년 3월 1일 삼일절에 공개됐다. 그러나 이들 독립전쟁 영웅들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육군사관학교에서 쫓겨나게 될 신세가 됐다. 영웅들이 쫓겨나는 자리에는 한·미 동맹 공원을 조성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는 6·25전쟁 당시 국군 1사단장으로서 북한군을 격멸한 다부동전투 영웅 백선엽 장군의 흉상 설치를 검토한다고 한다.

국방부는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이전하겠다는 핑계 중 하나로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전력을 들먹이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시대적 진실에서 벗어나 좀 억지스럽지 않나 싶다.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증거는 1922년 무장해제를 당한 후 돌아갈 곳이 없어 소련 시민으로서 삶을 시작할 때 소련 입국 신고서에 적은 직업과 목적을 들여다보면 잘 알 수 있다. 홍범도 장군이 신고서에 적은 직업은 `의병'이었고 목적은 `고려 독립'이었다. 김일성 조차도 “홍범도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며 배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지고 보면 백선엽 장군 역시도 항일 투사들을 체포하고 약탈·고문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전력이 있다. 홍범도 장군에게 공산주의 경력 딱지를 붙인다면 백선엽 장군 역시도 친일 경력 딱지를 뗄 수 없다. 홍범도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박정희 전 대통령도 북한 남로당 가입 이력이 있으니 박정희 생가와 기념관도 철거해야 되는 것인가”란 반문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지난 정부에서 이들 독립전쟁 영웅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세우게 된 명백한 이유가 있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역사 속의 전장 한가운데 이들이 있었고 이 영웅들이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라는 것을 미래 대한민국 육군을 이끌어 갈 후세들에게 길이 남겨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군 장교를 육성하는 육군사관학교에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이 우뚝 서 있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국방부가 6·25전쟁 다부동전투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세우고 싶다면 굳이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이전하려고까지 애쓸 필요가 없다. 추가로 설치하면 그뿐이다. 누구를 더 존경하고 진정한 영웅으로 생각할지는 육관사관학교 생도들의 몫이다.

일제로부터 빼앗긴 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총칼을 들고 목숨을 바쳤던 독립전쟁 영웅들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영웅들을 욕보이려는 일을 생각하는 나라가 과연 온전한 나라인지 자괴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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