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와 원자폭탄
오펜하이머와 원자폭탄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3.08.2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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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화제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과학자 오펜하이머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핵폭탄이란 소재만으로도 관심을 끈다.

놀란 감독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다. `인셉션'과 `인터스텔라' 등에서 보여준 감독의 역량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상상과 현실이 교묘하게 교차하면서도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인간의 욕망을 상상력으로 극대화해 준다.

놀란 감독이 새롭게 선보인 이번 영화에 대해 기대감도 높을 수밖에 없다. 그의 역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주와 새로운 차원을 다루는 과학 영화들은 인간의 끝없는 개척정신과 욕망을 실험적 작품으로 그려내 경이로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다르다. 기존의 작품이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졌다면 이번 영화는 지구공동체라는 배경 속에서 인간 내면을 파고들며 문제의식을 던진다.

그래서 `오펜하이머'는 단순히 한 과학자의 업적과 그를 둘러싼 인물 간의 갈등을 넘어 `선택'과 `혼돈' 그리고 `불안'이라는 또 다른 인류의 미래를 보여준다.

영화는 표면상으로 과학자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만들게 되는 과정과 그 이후를 담았다.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핵무기를 만들게 되면서 이해관계에 얽힌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과학자와 정치인의 생각과 세계관, 새로운 탐험에 대한 과학자들의 도전 욕구,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며 성공에 이르는 길에서 부닥치게 되는 시기와 질투, 강대국 간 힘의 경쟁과 강력한 무기를 소지한 패권 국가의 오만함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을 놓아주지 않는다.

영화의 기저에는 두려움이 작동한다.

불기둥에 쌓인 지구의 모습은 원자폭탄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달되고 원자들의 핵반응이 어떤 위력으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쟁의 위기감이 엄습한다.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가정 속에서도 기어코 핵이라는 불을 당기는 인간들의 모습은 평화라는 명분을 위안 삼아 강력한 핵무기개발에 나서는 현실과 대면하게 한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신의 말을 어기고 인간에게 불을 선사한 프로메테우스와 궤를 같이한다.

평생 기둥에 묶인 채 새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는 오펜하이머이자 핵우산 아래 사는 모든 인간들임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원자폭탄을 만들면서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어쩌면 파멸의 연쇄반응이 시작되었을 수 있다.”라는 문장은 그래서 이 영화의 중요 키워드가 된다.

1945년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고 78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매체가 오펜하이머를 주인공으로 일대기를 그려냈다.

그럼에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왜 `오펜하이머'에 천착했을까. 왜 지금일까.

인류는 원자폭탄이 세상을 흔들면서 핵위협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

인간의 욕망으로 시작된 핵무기 개발은 평화를 가장한 채 위기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파멸의 연쇄반응이 멈추지 않았고, 더 불안해진 현실에서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로 살아가는 인류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세상을 바꾸는 일만큼 달콤한 유혹은 없다. 과학자의 선택이 많은 갈림길을 만들며 불안한 내일로 이어지고 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파멸의 연쇄반응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또다시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두려운 마음으로 위기 극복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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