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게 어디 무심천 뿐이랴
흐르는 게 어디 무심천 뿐이랴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3.08.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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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아내를 처음 만나 함께 걸었던 길이 무심천 둔치다. 무심천 걷기 길을 걸으며 아내에게 인생의 반려자가 되어 달라고 청혼했다.

무심천을 볼 때마다 아내에게 약속했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나는 당신 곁에 있겠다고 했다. 그렇게 꿈도 소망도 컸던 시절 한 송이 꽃으로 수줍게 내 곁에 다가온 아내다. 옷깃이 한 번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전생에 얼마나 많은 인연을 스쳤기에 부부의 연으로 만났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세상을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수많은 사람과 스치며 지나간다. 그중에 지금까지 내가 옆에 두고 아끼고 싶은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내 생에 가장 좋은 만남은 아내다. 대부분 사람은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것을 자기가 운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한다. 운은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과 저절로 왔다 가는 길흉화복이라 했다.

사람은 만남의 인연을 피할 수 없기에 악연보다는 좋은 인연을 맺고 싶어 한다. 사실은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좋은 인연을 만들기란 보통 공이 들고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자칫하면 좋은 인연보다 나쁜 인연으로 발전하기가 더 쉽다. 조금만 소홀히 하던지 마음에 상처라도 주면 어쩌지 못하고 나쁜 인연이 되고 만다. 그러기에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은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아내와 함께 40여 년 세상을 바라보면서 관점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아내를 아프게도 했고 아내 때문에 많이 아파하기도 했다. 이제 생각하니 나를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가지려 한 집착과 욕심 탓이었다. 돌아보면 모두를 손에 쥐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동안 욕심 버리지 못하고 아집으로 보낸 세월이 아내와 함께했기에 아름다운 도전이었고 후회 없는 삶의 여정이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기습적으로 쏟아지는 소나기는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선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나의 일상도 준비된 우산 없이 맞은 소나기처럼 온몸이 삶의 빗줄기에 흠뻑 젖어버렸다.

무심천은 무섭게 내리는 소나기를 모두 받아들이며 흘러간다. 무심천이 흘러가듯 모든 것은 흘러간다. 머물고 싶었던 순간도 모두가 흘러갔다.

더 이상 지나간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겠다. 집착과 욕심을 어느 한쪽이 놓지 않으면 바람 불고 비가 내리는 마음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다. 흘러간다는 것은 내 것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도 알았다.

무심천은 나에게 사랑의 이름으로 다가온 소망의 길이요, 희망의 길이다. 초심이 흔들릴 때면 무심천 걷기 길을 걸으며 마음을 정화하고 청혼의 약속을 상기한다.

무심천 그득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를 본다. 자신의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기찬 몸짓 같다. 급류처럼 흘러가는 인생 가끔은 무심천을 바라보며 마음 비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무심천의 무심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가득한 인간의 오욕칠정과 번뇌를 비우는 것이다. 흐르는 무심천에 세파에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희망과 소망을 안는 것이다.

일상의 시간이 또 다른 내일을 향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모든 것을 포용하며 흐르는 게 어디 무심천뿐이랴. 시간의 흔적들 소리 없이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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