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
내가 사는 곳
  •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 승인 2023.08.2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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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내 안에 내가 살고 있었다. 두터운 껍질로 둘러싸인 그 속에 한없이 가녀린 내가 살았다. 부끄럼을 잘 타고 소심해서 집 밖을 잘 나가지 못했던 소년은 늘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울타리 안에서만 지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는 나를 보호하기도 했지만 나를 안으로, 안으로 침잠되게 했다. 하지만 안으로만 향하는 마음의 반대편에는 늘 외로움이 기웃거렸다. 그리고 다른 세상을 동경했다.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은 욕망을 불러왔고, 욕망은 모험을 하게 했고, 모험은 나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인도했다. 그렇게 내 안에 있던 나는 밖으로, 밖으로 돌출되어 나오면서 나와 다른 것들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그리고 내 안에 있던 나는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어디인가?

비가 몹시 내리던 날 충남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에 갔다. 먹장구름과 거센 물보라가 뒤섞여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알 수 없는 궂은 날씨다. 굵은 빗줄기로 인적이 끊긴 모래 언덕에는 태고의 적막이 묵연히 감돌고 있었다.

문득 그 적막함 속으로 들어서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이쪽과 구분된 저쪽으로 넘어서고 싶은 일탈한 마음이다.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계를 넘어야 한다.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두렵기도 하지만 설레기도 한다.

모래 언덕의 중간쯤 다다랐을 때 내가 서 있던 동네는 이미 저쪽 세계에 아득히 머물고 있었다. 나는 이미 다른 세계에 와 있었다.

척박한 모래 언덕에는 갯그렁, 줄보리사초, 해당화 등 키 작은 풀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아주 작고 보잘것 없지만 소중한 꽃을 피우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풀잎들이 꽃을 피우는 것인지, 모래 언덕을 부산하게 누비는 새끼손가락만 한 도마뱀은 무얼 먹고 사는지, 저들은 왜 이렇게 메마른 땅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바다와 갯벌, 모래 언덕과 동네가 질서정연하게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바다에는 물고기가, 갯벌에는 갯지렁이가, 척박한 모래 언덕에는 작은 생명들이 숙명처럼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그들의 경계는 언제부터 정해졌던 걸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과 경계를 이루며 살고 있는 걸까?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활동하고 있는 이 땅의 어디 즈음,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부분, 사랑하는 가족에게조차 더이상 다가갈 수 없는 한계, 나 자신마저도 이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의식의 접점 어딘가에서 경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그 경계를 허물고자 때론 용기를 무릅써야 했고, 때론 비겁해지기도 했고, 때론 진실을 가장하면서, 안으로 침잠되어 있던 나를 애써 끄집어내지 않았던가.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사는 곳은 어디인가, 비 오는 날의 바다처럼 모호한 경계를 오가며 살아가는 가는 것이 과연 참다운 내 모습인가?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어찌 보면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는 것이고, 그 변하는 내 모습이 지금의 내 마음이 사는 곳 아닐까?

`누군가의 방에 초대받는 것은 위대한 허용이고, 누군가를 내 방에 초대하는 것은 위대한 포용'이라고 한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를 내 방으로 초대하고, 누군가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며 경계를 허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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