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감사
잼버리 감사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3.08.21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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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전시상황이면 모두가 총살감.

새만금 간척지에서 열린 제25회 세계 스카우트잼버리대회 조직위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지난 12일 막을 내린 이 대회는 초반에 온갖 볼썽사나운, 또 듣기 거북하고 짜증나는 뉴스만 쏟아냈다.

그늘막이나 냉방 쉼터 등 폭염 대비책 없이 치러진데다 속출하는 온열질환자들. 텐트마저 칠 수 없는 뻘밭 야영장, 들끓는 벌레,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는 텐트촌, 식수난, 곰팡이 달걀 등등.

그중 압권은 `유령 대원 대소동'이었다.

대회조직위는 지난 8일 태풍을 피해 `새만금 철수 작전'을 전개하면서 3만여 명의 세계 각국 스카우트 대원을 서울 수도권, 충청권의 대학과 공기관 기숙사, 연수원으로 분산 배치했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충남 홍성군에 예멘의 스카우트 대원 175명을 배치하도록 준비해달라고 통보했다. 숙소로는 다행히 방학 중이어서 빈방이 많았던 홍성군 소재 혜전대학교 기숙사가 선정됐다.

홍성군과 혜전대학교는 즉시 힘을 합쳐 밤 늦게 도착할 예정인 예맨 대원들 맞이 준비에 나섰다. 기숙사 대청소부터 시작해 호실 청소, 대원들을 위한 출장 뷔페 음식 준비 등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대학 정문 앞에서 이용록 군수와 이혜숙 총장 등 공무원, 교직원 등 수십명이 도열해 일행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후 7시가 지나고 8시, 9시가 돼서도 온다는 손님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행안부와 조직위 등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담당자들은 `인솔자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계속했다. 그러다 뒤늦게 오후 9시가 넘어서야 예멘 대원 175명이 한국에 입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준비했던 175명분 2000여만원 어치의 음식은 물론 폐기 처리됐으며 대기했던 사람들 모두 허탈하게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경기도 고양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조직위가 고양시 소재 NH인재원에 시리아 스카우트 대원 80명이 머무를 계획이라고 통보했으나 막상 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예맨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한국에 입국조차 하지 않았던 `유령 대원'들 이었다.

이 사실을 접한 언론들이 곧바로 조직위의 한심한 업무 처리를 비난하며 질책성 기사를 쏟아냈다.

제목이 `가관'이다. `한국은 지금 잼버리 대소동', `잼버리, 이제는 유령대원 해프닝까지' 등등.

한마디로 `마개 빠진' 행정이 아닐 수 없다.

전시상황이었으면 총살감이라는 얘기가 나올만하다.

한창 적과 경계에서 대치하며 공방 중인 전선에서 있지도 않은 아군 병력을 적진에 배치한 것으로 전황판을 만들어 지휘관에게 보고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아군 진지가 속절없이 뚫려 모두가 괴멸상태에 처하는 끔찍한 결과까지 예상할 수 있다.

13일부터 대원들의 출국으로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난 세계 잼버리대회는 여전히 한국에선 현재 진행형이다.

세계적인 망신살로 체면, 아니 그보다 더한 국격을 구긴 책임의 소재를 가리기 위한 `추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21일부터 전라북도,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감사 대상에 오른 기관들을 상대로 자료 수집에 돌입했다. 본격적인 감사에 착수한 것이다. 6년여 동안 국민 세금 1000억여원을 들이고 국가적 대망신을 불러온 황당하고 어이없는 참사. 더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한 조사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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