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깨닫는 것
뒤늦게 깨닫는 것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3.08.2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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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읍내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친정엄마가 오이와 호박을 잔뜩 보내왔는데 그 양이 많아서 나눠 먹자는 전갈이었다. 하루하루 불볕더위와 맞서느라 그야말로 입맛을 잃어가던 차에 잘 되었다 싶어 두말없이 달려갔다. 인정 많은 미용실 여주인은 먹을 것이 생긴다거나 수다가 필요하면 종종 놀러 오란 말을 하곤 했다.

미용실에 들어서니 손님 한 분이 파마를 말고 투명비닐 모자를 쓴 채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나를 한달음에 달려오게 한 오이와 호박을 담은 상자도 한쪽 구석진 한자리를 차지한 채 쉬고 있었다. 덮여 있던 신문지를 걷어내자 오이, 호박, 가지, 방울토마토, 참외 등 한눈에 봐도 싱싱하다. 보물상자가 따로 없다. 주인의 발자국을 얼마나 자주 들었을지 가히 짐작 가는 자태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마치 한 묶음 꽃다발 같다.

채소만 받아 들고 오기가 미안해 머리 염색도 하고 손질도 할 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시작된 그녀와의 자잘한 수다. 사시사철 철마다 직접 지은 먹거리를 보내온다는 그녀의 친정엄마 이야기였다. 언젠가 한 번 그녀가 팔순의 노모를 모셔다 본인의 미용실에서 파마해 주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세월에 밀린 듯 허리가 많이 굽어 불편해 보였었다.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검게 그을린 이마와 옹이 진 손등도 기억이 난다.

그녀의 어머니는 계절마다 제철 먹거리를 키워 자식들 먹이는 일을 큰 낙으로 사는 분 같았다. 봄이면 집 주변에 지천으로 깔린 냉이와 쑥을 뜯어 보내고, 여름이면 이렇게 온갖 채소를 직접 길러 보내주신단다.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그런데 그녀는 `먹을 만치'가 아닌 `아주 많이, 엄청나게 자주' 보내주니 오히려 짐처럼 느껴진다며 부담감을 토로했다. 아이들도 다 커서 타지 생활 중이고 남편도 하루 한 끼 집에서 먹을까 말까 해서 남아돈다며 애물단지 취급이었다. 조금만 보내 달라고 얘기해도 소용없다며 툴툴댔다.

그녀의 배부른 하소연을 듣고 있자니 나도 부모님 생각이 났다. 자식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것은 세상 모든 부모의 불치병인가. 부모님은 철마다 손수 지은 농산물을 택배로 자주 보내왔다. 감자를 캤다며 집 주소를 물어오고, 매미울음 무더위 속을 가로지르는 철이면 엄마표 옥수수를 맘껏 먹었다. 당연한 듯 받아먹던 시절이었다. 이제 부모님은 노년에 겪어야 할 온갖 지병을 안고나서야 그 일에서 손을 놓으셨다. 나도 그때 오늘의 그녀처럼 `아주 많이, 엄청나게 자주'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집밥보다는 외식을 좋아해 썩혀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을 때 `이젠 그만 보내라.'며 날을 세웠다. 좀 더 살갑게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자주 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식들은 늘 뒤늦게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

서로의 이야기로 시간이 흐르는데 파마를 만 채 소파에 앉아 졸던 손님이 어느새 우리의 수다에 동참하셨다.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 보내줄 때가 좋은 거지요. 난 몇 년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이젠 내가 제사상에 사과, 배 올려놔야 해요. 나중에 시간 날 때 잘해 드린다는 말처럼 공허한 게 없어요.” 어르신의 얼굴에 회한이 뚝뚝 묻어났다. 툴툴대던 미용실 여주인의 입술이 어느새 얌전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오늘부터 전화로 부모님의 안부를 물을 참이다. 아주 많이, 엄청나게 자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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