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보이지 않는 군대
사자가 보이지 않는 군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08.2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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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해병대원이 구명조끼도 없이 수해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다 숨진 사건에 대한 수사가 산으로 가고 있다. 돌연한 수사 유보, 수사단장의 항명 혐의와 해임, 외압 의혹 등이 얽히고 설키며 책임규명이라는 본질이 낯뜨거운 진실게임에 갇히는 모양새다.

상하급자가 엇갈린 주장으로 충돌하며 군이 콩가루 집안이 됐다는 조롱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사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해병대 수사단이 `사단장과 여단장 등에게도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결과 보고서를 올린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말이다.

이 보고서는 이날 해병대 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장관의 결재까지 차례로 통과했다. 수사자료를 첨부해 경찰에 이첩만 하면 군의 역할은 끝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부대 최고 지휘관까지 책임을 묻기로 한 군의 결연한 태도는 바로 다음날 돌변했다.

국방부는 수사단에 장관 결재까지 끝난 수사자료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불복하고 이첩을 강행한 수사단장은 항명죄를 쓰고 해임됐다. 경찰에 보낸 수사자료를 다시 찾아오는 촌극도 벌어졌다.

수사단장은 국방부의 외압을 폭로했다. 그는 국방부로부터 혐의자를 현장 지휘관급 이하로 축소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해병대 사령관실에서 국방차관이 사령관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봤다며 `사단장은 혐의대상에서 빼라'는 내용이었다는 구체적인 정황도 제시했다.

사령관과 차관은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기강이 추상같아야 할 군에서 상급자와 하급자가 서로를 음모론자로 모는 진흙탕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수사보고서가 국가안보실의 요구로 대통령실에 전달됐던 것으로 알려지며 대통령실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보다못한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섰다. 인권위는 국방부가 경찰로부터 회수한 수사자료를 그대로 다시 넘겨주고 수사단장에 대한 항명죄 수사를 보류하라는 의견을 내놨다. 성역없는 신속한 수사와 외압의혹 규명이 우선돼야 한다는 취지가 읽혀진다.

인권위까지 수사보고서를 놓고 벌어진 저간의 과정에 의문을 표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수사단의 수사결과에 공감하고 경찰 이첩을 승인한 군 수뇌부에선 누구 하나 자신의 판단이 부정된 데 대해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를 낸 부하는 항명의 수괴로 몰려 옷을 벗고 형을 살지도 모를 처지에 놓였는데도 말이다.

이들은 군이 왜 수사를 외부 민간기관에 위탁하는 수모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지난해 7월 범죄로 인해 발생한 군인 사망사건은 민간 경찰이 수사를 맡도록 군사법원법이 개정됐다. 2021년 여군 성추행 사망사건이 군 내부의 축소·은폐로 얼룩지자 푹발한 비난 여론이 법 개정을 이끈 것이다. 군의 치욕으로 기록될 일이다.

하지만 경찰에 넘겼던 장관 결재 수사자료를 되찾아오는 구차한 행태에서는 바닥에 떨어진 국민 신뢰를 부끄러워하는 염치조차 보이지 않는다.

국방부는 수사단장 항명 수사에 대한 적절성을 따질 수사심의위 구성과 소집을 서두르고 있다. 입맛대로 심의위원을 인선하고 요식으로 절차를 진행할 경우 외압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사슴 무리가 한마리의 사슴이 이끄는 사자 무리보다 두렵다.

아테네의 장수 카브리아스가 했다는 말이다. `사자가 보이지 않는 군대'가 국민의 믿음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군의 수뇌부가 자문하고 곱씹을 말이다.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엊그제 국방부 대변인이 했던 말이다. 그는 수사자료의 경찰 이첩을 보류한 이유를 “혐의자의 절반에 달하는 초급간부를 배려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하급장교를 빼고 윗선에 책임을 묻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됐다. 이 말만큼은 뒤집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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