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백열전구 하나도
고작 백열전구 하나도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08.1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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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내 고향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이다. 인적이 거의 닿지 않는 산골에서 나무껍질로 지붕 엮고 옥수수대궁으로 부엌문을 매달고 살았다. 여름이면 장마로 불어난 물이 집 옆의 계곡으로 흘렀고, 겨울이면 산속의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다. 겨울 밤, 누군가 켜놓은 등잔불 밑으로 모여들어 잡담이라도 할라치면 외할머니는 할 일도 없이 기름만 태운다는 이유로 등잔불을 꺼버렸다. 등잔불도 꺼진 산속의 밤, 가끔씩 우는 산짐승 소리와 문풍지 흔드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도회지로 나와 방 하나를 얻어 살면서도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늦게 불을 켜는 집이었다. 전기도 다 돈이라는 엄마의 주장에 감히 대꾸하고 나설 사람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백열전구 하나 켜는 일인데도 말이다.

지금 우리 집은 안방과 거실에 전등이 켜있고, 에어컨이 돌아가고, 냉장고 3대가 켜있고, TV와 컴퓨터가 켜있고, 핸드폰과 무선청소기가 충전중이고,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다. 여기에 식사 준비라도 할라 치면 전기밥솥과 인덕션과 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렌지가 전기를 뭉턱뭉턱 빨아 먹는다. 전기요금이 십 만원을 넘어도 할 말은 없다. 이만큼 편하게 산값치곤 싸게 먹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전기를 지금처럼 어려움 없이 쓸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전기 공급이 점차 어려워진다고 한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환경변화로 인해 언젠가는 상상을 초월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전기를 쓸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에너지 수급에 불안을 느낀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이미 에너지 절약의 실천화에 나서고 있다. 심야 조명광고를 제한하고, 냉장된 음료에는 전기료를 더 붙이고, 파리의 에펠탑은 한 시간 일찍 소등을 한다. 프랑스에서는 뉴스 말미에 전력예보도 한다고 한다. 전기의 공급과 수요현상을 일기예보 하듯이 방송하고, 정해진 시간에는 핸드폰 충전조차 삼가 달라는 내용을 내보내고 있다고 한다. 대책 없이 펑펑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전기 없는 세상을 사느니 미리 미리 에너지자원을 아끼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천연자원이 없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4.8%나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살아온 인생 전체가 절약이었던 엄마는 아직도 우리의 씀씀이에 혀를 찬다. 전기도 물도 돈 안 들어가는 것처럼 쓴다는 것이다. 깨끗한 물은 모았다가 걸레라도 빨고, 필요 없는 전기는 끄고, 웬만큼 덥고 추운 거는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렇게까지 하며 사느냐고 반박을 하지만 이 시대가 바로 그런 것을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엄마의 절약은 단지 우리가계에 국한된 것이지만 전 세계에 닥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도 절약 말고는 다른 길이 없는 듯하다. 유럽인들이 내놓은 폭염대처법 세 가지 `참는다' `버틴다' `견딘다' 만 보아도 절약만이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등잔불 하나가 유일한 불빛이었던 어린 날의 내 고향을 생각하면 마음속에 흐르던 잡다한 전류들이 걷히고 산골의 계곡물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밤하늘 빼곡히 솟던 별들이 떠오르고 뒷마당 배나무위에서 울던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들릴 듯하다. 가끔은 그렇게 주변의 전기를 차단하고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방에서 흐르는 전자파에서 잠시나마 내 몸을 빼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에너지절약이라는 필요 불가결의 목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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