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
코코넛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8.1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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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둘째 아들 가족과 보라카이에 갔다. 석양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바닷가 카페로 가 자리하고 앉았다.

“주문받습니다.” 아들의 말에 고물 묻을세라 두 손녀와 며느리는 본인들이 좋아하는 생과일 즙을 주문한다.

본인은 냉커피를 주문하고는 “어머니는요?” “코코넛” 아들은 귀를 의심했는지 다시 묻는다. 삼 모녀 맛 좋은 생과일 즙을 시켜야죠. 합창한다.

“응 나는 음료 중의 제일 좋은 음료가 코코넛이야.” 아들도 한마디 거든다. “맛도 별로고 값도 싸요.” 기다려도 어미의 맘이 바뀌지 않을 것을 눈치 챘는지 코코넛 물이 링거 대용으로 쓸 정도로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코코넛은 너무하다며 마지못해 주문한다.

그날부터 아들은 오는 날까지 하루에 하나씩 벽돌 한 장 무게 되는 빨대 꽂은 코코넛을 사들고 숙소로 들어와 “아들 주머니 사정을 아시나?” 농을 건다.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큰아들 가족이 선교사로 팔 년 사는 동안 필리핀을 여러 번 방문했다.

갈 적마다 열대 과일의 별나게 맛난 맛에 반한다. 그럼에도 맹물 같으면서도 청순하고 순수한 코코넛의 맛에 매료된다. 맛을 굳이 설명하라면, 맹물에 설탕 조금 첨부했다고 할까.

모든 과일이 형체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과육이 자라고 날수에 따라 향과 맛이 짙어진다. 그리고 과육을 보호하기 위해 막(껍질)이 있다.

우리나라 밤도 세 겹의 껍질이 속살을 보호하는데 코코넛도 형질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단단한 겉껍질을 시작으로 목질, 과육, 즙을 저장할 방이 마련된다. 조직이 매우 치밀하다.

여인의 몸도 여성으로 형성되는 순간부터 아기씨를 받을 방이 준비되어 있다. 하여 아기씨를 받으면 그 방은 아기가 자라는 만큼 아기집이 커진다.

아기집이 늘어나는 동안에는 여인의 몸은 여러 증상을 체험한다. 그렇다면, 코코넛도 매일 한 방울 한 방울 음료를 받아 품는 동안 방이 조금씩 커 나가는 과정에서 몸피도 키워야겠지.

그리고 액즙을 받아 저장하는 동안 여인처럼 이런저런 현상을 겪으면서도 물의 부피만큼 기쁨도 커가지 않았을까 싶다.

이 과정을 생각하면 귀하다고 표현하기보다는 보배롭다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코코넛 과즙 맛을 담백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담백하다 표현하련다.

그리고 과즙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막인 과육도 칼륨은 높고 나트륨은 낮고 섬유질과 탄수화물이 많아 식품으로 활용한다. 나도 아삭한 식감이 좋아 먹고 싶은데 단단한 껍질을 반으로 자를 도구가 없어 매번 버리는 게 너무 아쉽다. 코코넛도 씨앗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벌어질 수 있는 틈이 있어 요령만 알면 특별한 도구 없이도 깔 수 있단다.

바기오에 두 달 머무는 동안 주일 새벽이면 아들 가족과 선교지 교회에 갔다. 도로변 점포 옆에 수북이 쌓아놓은 코코넛을 달리는 차 창으로 볼 적마다 몽땅 사다 광에 저장해 놓고 싶은 욕심이 났었다.

이번에는 호텔만 나오면 바닷가 해변 야자수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코코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반갑던지. 요즘은 우리나라 큰 매장에 가면 열대 과일을 쉽게 볼 수 있다. 더 반가운 소식은 기후변화로 우리나라에서도 수확이 가능한 과일이 있다.

듣기로는 가공된 코코넛을 수입해 왔다는 소식도 들은 것 같은데 아직 접하지 않았다. 코코넛도 직접 재배가 가능한 날도 머지않아 오지 않겠나 싶다.

그날이 오면 현지의 두 배 값이 든다 해도 사 먹어봐야지. 연간 약 200만 톤이 생산된다는 필리핀 맛과 같은지. 바라기는 토질과 날씨가 달라 맛이 변질되지 않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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