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년 풍파 헤쳐온 근대교육 공간
700여년 풍파 헤쳐온 근대교육 공간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3.08.16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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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문화유산 직지 청주의 미래유산 C-콘텐츠로
④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망선루'
고려·조선 관청 건물서 충북 최초 청남학교 개교
1921년 일제 때 해체 … 두 차례 시민운동으로 복원
청년·여성 계몽운동·신교육 담당 … 문화재 활용 모색
망선루 1930년대 청남학교 졸업식 장면.
망선루 1930년대 청남학교 졸업식 장면.

사람도 건축물도 공간도 누적된 시간만큼 숱한 서사가 흐른다. 그래서 남아 있는 것에서 더 많은 역사를 이해하고 직관할 수 있다.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망선루는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청주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서있다. 전설인 듯 풍문인 듯 청주 역사를 휘감고 있는 망선루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의연하게 중앙공원을 지키고 있다.

격변의 역사를 딛고 우리 앞에 우뚝 서 있지만 망선루의 긴 여정을 따라가면 낡고, 부서지고, 헐리고, 옮겨 세워지고, 복원되며 몇 차례 사라질 위기를 맞는다. 700여 년 세월의 풍파에도 재건과 복원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시대정신을 담아내며 청주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중앙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망선루는 고려 때 지은 청주 관청의 누각으로 연회와 향연이 이루어진 장소였다. 청주 동헌인 청녕각과 객관 동쪽에 있던 망선루를 연결지으면 고려 관청의 모습이 그려진다. 관청 안에서도 유독 높은 기둥 위에 이 층으로 지은 누각은 무심천 물길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옛 이름이 `아름다운 경치를 모아놓았다'란 의미로 취경루(聚景樓)라 했으니 옛 청주의 제일 풍경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1932년 망선루, 1935년 제1회 청남학교 학교부흥회 모습-뒤에 망선루.
1932년 망선루, 1935년 제1회 청남학교 학교부흥회 모습-뒤에 망선루.

이 취경루에 고려 공민왕이 오른다. 1361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을 거쳐 청주 관아에 머물렀던 공민왕은 취경루(망선루)에서 과거시험을 실시한다. 홍건적 난이 평정됨을 기뻐하고 민심을 달래는 차원에서 지역인재 채용을 위한 과거시험이었지만 국가 중요 행사가 청주에서 열리면서 지역학풍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선 세조 7년(1461)에 낡은 누각을 수리하고, 청주출신 세도가 한명회가 편액을 고쳐`망선루'라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관청의 연회장으로 600여 년 사용된 망선루는 그러나 하루아침에 헐리는 운명에 처한다. 일제강점이 시작되면서 청주읍성과 읍성 내 건축물들은 철거 대상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청주읍성에서 패한 일본군은 성을 훼철했고, 성안에 있던 망선루도 청주보통학교 여자부 교사로 이용되다가 1921년 해체한다. 그리고 빈자리에는 일본 경찰국 유도장인 무덕전(武德殿)이 신축되면서 망선루는 영영 자리를 잃게 된다. 해체한 누각 목재는 경매에 내놓았으나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오랫동안 골목에 방치된 채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다.

1964년 망선루, 제일교회로 이건된 망선루.
1964년 망선루, 제일교회로 이건된 망선루.

버려졌던 망선루는 극적으로 또 다른 운명과 조우한다. 골목에 쌓아놓은 목재를 안타깝게 지켜본 김태희 선생과 지역 유지들은 망선루를 새롭게 개축해 학교로 사용하는데 의견을 모으고 모금 운동을 통해 1800원에 인수한다. 그리고 2년 뒤인 1923년 육거리 시장 안의 청주제일교회 부지로 옮겨 세운 뒤 1924년 9월 청남학교를 개교한다. 당시 청주제일교회 부지로 이건한 것은 충북의 최초 학교인 광남학교(1904년·청남학교 전신)를 운영하던 밀러 선교사의 영향으로 청주에 종교학교를 설립해 신교육을 담당했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

미국 선교사의 학교설립으로 망선루는 청주 근대교육에 불을 댕긴다. 미션스쿨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제일교회 청년들과 여성들에게 청남학교는 다양한 교육 학습장이 되었다.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조선어 말살정책을 피해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르치는 민족교육도 담당했다. 기독청년운동과 기독여성운동으로 확산된 미션스쿨은 사회계몽교육의 요람이 되었다. 일제강점을 지나 근대교육 공간으로 거듭나기까지 새로운 시대의 옷을 입어야 했던 망선루는 교육도시 청주의 동맥과도 같은 존재였다.

망선루 현재 모습, 청주예총 망선루전국서예공모전.
망선루 현재 모습, 청주예총 망선루전국서예공모전.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학교 기능을 다한 망선루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게 된다. 90년대 후반, 청주시민단체 주도로 문화재 제자리 찾아주기 운동이 펼쳐지면서 망선루 이전과 복원을 요구했다. 서명운동이 진행되었고 현장을 탐방하는 역사교육으로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건과 학교 활용으로 변형된 망선루가 더 이상 훼손과 변형돼선 안된다는 주장에 제일교회가 망선루 건물을 청주시에 기증함으로써 시민운동에 의한 두 번째 복원이 빛을 발하였다. 비록 원위치인 쥬네스 영화관 자리로 돌아갈 순 없었지만 2000년 인근 중앙공원 안으로 옮겨 원형을 복원했다.

시간의 역행처럼 이제 날렵한 처마끝 하나로도 중앙공원을 호령하는 망선루가 되었지만 선비의 시문도 학생들의 글 읽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출입금지에 발길 끊긴 누각만이 허허로이 오가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교육유산으로의 문화재 활용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연지민기자
annay2@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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