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담한지미술관
영담한지미술관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3.08.1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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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전통을 이어가는 삶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묵묵히 지켜온 전통의 길은 오랜 시간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 전통을 잇기 위한 노력은 결과에 앞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인내의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
40여 년 한지 제작을 연구하며 다양한 쓰임새의 전통 한지를 복원 계승 발전시켜 온 영담 스님을 만났다.
우리나라 대표적 한지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 영담 스님이 만든 한지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직지심체요절, 월인천강지곡, 왕오천축국전의 영인본 제작에 사용됐다.
영담한지미술관에 전시된 고서 영인본을 바라보면서 연약한 종이가 역사에서는 메시지를 전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에 새삼 놀랐다. 종이의 물성과 개념 쓰임에 대해 둘러보면서 한지의 제작 과정을 살펴보았다.
먼저 1년생 닥나무를 채취하여 10시간 정도 삶아서 껍질을 벗겨내면 피닥이 된다. 표면이 넓고 고은 피닥을 장시간 물에 넣고 불린 후 칼로 겉껍질을 제거하면 백닥이다. 백닥을 잿물에 넣고 5시간 동안 삶는다. 삶은 백닥을 맑은 물로 열흘 동안 헹군다. 잘 헹군 백닥을 햇볕에 말려 하얗게 표백한다. 잡티를 제거하고 물을 짜낸 후 넓은 돌판에 놓고 닥섬유가 물에 잘 풀리도록 방망이로 두들겨 준다. 닥죽을 깨끗한 물에 넣고 발로 걸러서 종이를 만든다. 만든 종이를 열판에 붙여 건조한다.
한지의 제조 방법이 특이하고 손이 많이 간다. 영담 스님은 반복하면서 숙달되는 노동의 고행을 수행으로 삼아 깨달음의 경지를 향했다. 새로운 기술보다는 전통의 맥을 찾아 고유의 기술과 재료를 이어온 영담 스님의 삶이 참 구도자다.
영담 스님은 한지를 만드는 일에 머물지 않고 종이 자체가 예술작품이 되도록 하였다. 한지를 생활 속 예술로 부활시킨 영담 스님은 한지 작품을 통해 불법을 전하는 새로운 구도의 길을 걷고 있다.
한지의 평면적 재료를 구조화한 작품이 호기심을 불러온다. 한지를 새로운 사물의 존재로 확장시킨 영담 스님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영담한지미술관은 청도 운문면 방음리 산골 마을에 위치한다. 작고 아담한 미술관에는 한지의 가치와 비전을 담고 있다. 2천여 점이 넘는 영담 스님의 작품과 한지 작가들의 작품 15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마다 이야기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다. 뒤돌아보면 후회로 남는 이야기일지라도 끝없는 삶의 이야기를 만들며 산다.
영담 스님은 자신의 삶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끄럽지는 안다고 했다. 스님으로 살고 있지만 중노릇에 얽매지 않는단다. 해탈을 누렸지만 방종하진 안았단다. 명리를 ?았지만 비굴하지는 안았단다. 학문을 좋아해서 다행히 무식은 면했다며 겸손의 말씀을 하신다.
영담 스님은 칠십 평생 살아온 뒤안길을 뒤집어서 오장육부 깊은 삼초신경에 숨어 있는 허물조차 끌어내고 싶단다. 그래서 오뉴월 땡볕에 일광욕하듯 낱낱이 널어 말리고 싶단다. 오직 하나 못다 한 정회는 우리 종이 한지의 윤회 고리를 못 살려 미안한 마음이란다. 그 또한 인연과 시세에 따라 흘러갈 뿐이라며 미소 짓는다.
영담 스님의 미소가 주는 편안함에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 마음이 둥그레진다. 사람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사로잡는 영담 스님의 미소가 부처의 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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