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지 않는 힘
눈으로 보지 않는 힘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3.08.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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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맹학교 초등부에 진학하기 직전에 나는 내 몸의 기능이 주위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나의 학예회 미술작품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였다.

“만지면 안 돼!”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만지지도 않고 볼 수 있다는 걸까? 그것이 무척 신기했다.

내게 시력은 초능력이었다. 만지지도 않았는데 멀리 있는 물체를 그야말로 손에 쥔 듯이 알 수 있다니. 마치 텔레파시나 염력 같지 않은가. 그러나 초능력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이 들 무렵부터 시력 없이 세상을 상대해온 사람에게는 눈으로 보지 않는 생활이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 중에서 발췌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의 저자 호리코시 요시하루는 시각 장애 언어학자다.

2022년 출판된 그의 책은 `본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튀어나온 점들인 점자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읽는다. 그러니 요시하루는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를 귀를 통해 받아들이고, 눈으로 읽는 글은 손으로 읽는다.

귀로 보는 그를 가만히 상상해 보았다. 눈을 감고 귀로만 무언가를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요시하루는 말에 외모가 있다고 한다. 낯선 곳을 방문하게 된 그는 길을 물어물어 근처까지는 도착하였다.

그러나 건물을 특정할 수가 없어 헤매게 되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행선지를 정확히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근처에 호텔이 있으니 거기서 물어보면 알려줄 수 있을 거라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희망을 품고 호텔로 간 그는 프런트의 젊은 남성이 “아아, 거기요? 여기예요.”하며 지도를 펼치는 소리를 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정을 말하고 안내를 정중히 부탁하자, 예의 바른 그 청년은 안내를 해주기로 하였단다.

한껏 감동하여 그의 팔을 잡고 걷는데, 그 청년이 실망스런 말 한마디를 덧붙였단다. “그런데 이번만 해드리는 거예요.” 갑자기 마음속이 어두워졌다. 귀로 보는 그는 말의 몸통이라 하는 핵심 내용 외에도 말의 표정이 읽힌다고 한다.

“이번 한 번은 봐준다”, “어쩔 수 없다.” 등에서 그는 매우 강렬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고 한다. 말투에서 말이다.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좋았을 남을 깔보는 말은 의외로 그 말을 하는 당사자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단다. 말의 몸통보다도 이 표정이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고 강조한다. 말의 외모는 이 표정, 매무새인 것이다.

요시하루를 통해 본다는 것을 짚어보게 되었다.

“저 꽃 좀 봐”, “논문 봐 주세요” 이런 말에서 본다는 것은 그저 눈으로 본다는 것 이상이다. 눈에 담아두는 것, 외려 눈을 넘어 머리로 마음으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에 더 가깝다. 요시하루는 `보다'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메타포라고 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 비유가 `보다'라는 것이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요시하루 역시 `본다'. 단지 눈이 아니라 귀로 또는 다른 감각으로 그는 본다.

마음속의 `상상력'이라는 감각기관이 그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경치를 보여주고,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려주며, 경험한 것 없는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고 어려운 것을 손에 쥔 듯이 알게 해준다. 보이는 사람이나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들리는 사람이나 들리지 않는 사람이나 이 마음속 감각은 완벽하고 평등하다고 그는 말한다.

오늘은 가만히 눈을 감고 세상을 보고 싶다. 모두에게 평등한 완벽한 마음속 감각을 믿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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