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는 누구인가
나와 너는 누구인가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08.1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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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바보 같은 질문을 해보자. 내 앞에 보이는 대상들은 내가 보는 것처럼 있는 걸까? 눈앞의 대상들은 실재일까? 그게 실재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세상이 나에게 보이는 것처럼 있다는 걸 어떻게 알지? 철학자들은 외부 대상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칸트는 우리가 보는 세상이 실제로 외부 세계와 같은지 어떤지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외부 세계는 물음표(?)로 남겨진다.

현대과학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들은 우리의 두뇌가 만들어낸 가상이라고 말한다. 한 예로 하나의 대상이라는 개념을 검토해보자. 우리는 우리 외부 대상을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파악한다. 우리는 외부의 스탠드, 찻잔을 통합된 전체로서의 `한'대상으로 파악한다. 현대 과학은 통합된 전체로서의 한 대상을 우리의 두뇌가 조직해낸 표상으로 파악한다.

빛(물리적 에너지)이 들어와 우리의 눈(감각기관)을 자극하면서 보는 작용이 시작된다. 망막의 수용체 세포가 빛을 받아들이면 망막의 다른 세포들(원추, 원통)이 빛을 전기 신호로 변환한다(1차 가공). 이 전기신호는 두뇌의 비밀공간과 같은 시상에 전달되고 시상은 고차적인 인지를 담당하는 전전두엽피질, 정서를 담당하는 편도체, 과거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해마 등과 정보를 주고받아 전달된 전기신호를 걸러 앞으로의 정보처리과정(지각, 인지)에 적합한 형태로 변환(2차 가공)해낸다.

2차 가공이 끝난 정보는 색은 색대로 모양은 모양대로 방향은 방향대로 운동은 운동대로 따로 분류돼 일차 시각정보 처리 피질(V1)로 전달된다. V1을 거친 정보는 시각 피질들을 거치면서(V2-V4) 다양한 특징들이 추출, 결합, 조직돼 복합 표상이 된다(3차 가공). 그리하여 측두엽 하부 피질에서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서의 상을 만들어낸다(4차 가공). 결국 외부 대상에 대한 통합된 전체로서의 하나의 대상이란 두뇌의 정보처리과정에서 산출된 표상일 뿐이다. 우리는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하나의 개체로 파악하고 있는데 그게 사실은 두뇌가 만들어낸 이미지다.

이상과 같은 과학적 결론의 함의는 충격적이다. 통합적인 전체로서의 하나의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우리가 산출해낸 표상이라면 표상 이전의 대상은 어떤 상태일까? 적어도 하나의 통합된 전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건 명확하다. 집사람과 나는 1대1로 만나 살고 있다. 집사람도 한 사람이고 나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두뇌의 정보처리과정에 따르면 집사람이나 나에게 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울 수 없다. 곧 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덮어씌울 수 없다는 말이다.

원래 나도 너도 정체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내가 편하기 위해 내가 구성해낸 정체성을 상대에게 덮어씌우는 걸 수 있다. 정체성이 없는 나와 너 서로에게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위배되지 않는 사고와 행위의 일관성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일 수 있다. 나도 너도 원래 일관적일 수 없는 존재인지 모른다. 다만 피차 간에 일관적이려고 노력하거나 일관적인 척하고 사는 건지도 모른다. 부부끼리도 가끔 `저 사람에게 저런 면이?'하면서 깜짝 놀라거나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하면서 어이없어 하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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