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성장의 그늘
고속성장의 그늘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3.08.0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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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전국에서 묻지마 폭행과 살인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일상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 신림역에서 20대 남성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하고 30대 남성 3명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힌 묻지마 살인 사건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살인 행위라는 점에서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제주에서는 70대 할머니와 80대 할아버지를 이유없이 폭행한 사건이 벌어져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3일에는 분당의 한 백화점에서 차량 사고 후 흉기 난동으로 1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치는 묻지마 살인이 벌어졌고, 4일에는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2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교내에 침입해 50대 교사를 흉기로 찌르고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이 많은 백화점도,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현장도 안전하지 못함을 드러낸 대형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일상의 불안이 가중되면서 온라인에는 모방 범죄로 의심되는 살인 예고 글이 40여 건이 올라오면서 전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묻지마 폭행과 살인 피의자들을 보면 대부분 20~30대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비관하다가, 조현병을 앓던 젊은이가 세상을 향해 칼부림하는 모습은 두려움 못지않게 안쓰러운 마음도 크다.

기회를 잡기도 어렵고, 그조차 앗아간 자본사회가 그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한국이 경제선진국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 이면에는 성장에 따른 그늘도 그만큼 깊고 넓다.

이런 간극을 간과한 채 오랫동안 고속 성장에 치중한 정책들은 보통사람들에게 상대적 빈곤의 그림자를 키워왔던게 사실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급변하면서 경제, 사회, 일자리에서 취약계층이 되어버린 젊은 개개인들은 자본에 의한 괴리감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은 하늘에 별 따기가 됐고, 그나마도 있던 일자리는 기계화·자동화로 갈 곳을 잃었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하는 그들을 온기로 받아줄 사회안전망도 사라지고 있다. 기회도 줄어들고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한국에 대한 불만이 위협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개인의 문제를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개인의 책임을 국가의 책임으로 돌려선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옛날의 그때가 아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공동체 구성원이 존엄한 존재로 살 수 있도록 안전을 책임지고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노력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선진국에서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것도 빈곤층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빈부의 격차를 줄여 안전한 사회를 담보하기 위함이다.

묻지마 폭행과 살인에 대해 극악한 죄질로 비난만 하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가를 돌아보고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복지를 펼치는 것도 시민안전을 위해 국가가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최근 경찰은 묻지마 폭행과 살인 등 범죄예방을 위해 전국 14개 시·도 경찰청이 담당하는 다중 밀집지역 43곳에 소총과 권총으로 이중 무장한 경찰특공대 전술요원을 배치했다는 소식이다. 권총을 든 경찰이 범죄예방에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알 수 없지만 오히려 사회불안만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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