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악습에 이젠 마침표를
부실 악습에 이젠 마침표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08.06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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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넘버 3'란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검사가 조폭 부두목을 만나 입씨름을 벌이다 “나는 죄가 밉지 사람이 밉냐는 말이 제일 듣기싫다”며 “죄가 무슨 죄가 있나? 죄를 지은 놈들이 문제지”라고 말한다.

여권에서는 이번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부실한 `무량판' 시공이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무량판 공법이 전 정권에서 아파트로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공법이 무슨 죄가 있나? 학계에서도 효용성을 인정받고 검증도 받은 기술이다. 공법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설계를 하지않고 설계대로 공사를 하지않은 사람들이 문제라는 말이다. 여당은 2017년부터 본격화 한 전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공급계획도 트집을 잡았다. 아파트를 떠받치는 지하 주차장 콘크리트 기둥에서 철근을 빼먹은 탐욕과 무능에 지울 죄를 애꿎은 주택확대 정책에 묻는 것도 공감하기 어렵다. 아파트 시장에서 아직도 진행 중인 설계·시공·감리의 총체적 부실에 대한 책임을 출범 1년이 넘은 정권이 과거로 돌리는 것은 구차한 변명이다. 와우아파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에서 지난해 공사 중에 붕괴한 광주 아이파크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숱한 참사를 겪으면서도 부실공사의 악습에 종지부를 찍지못한 역대 모든 정권에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실제로 철근 누락은 대부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지하주차장에서 발견됐다. 무량판 구조는 수평으로 무게를 지탱하는 보를 없애고 수직으로만 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치는 기법이다.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지하주차장에 주로 이 공법이 사용된다. 무엇보다 업계의 구미를 당기는 장점은 낮은 비용이다. LH도 비용 절감을 위해 2017년부터 아파트 주차장에 이 공법을 도입했다. 하지만 지붕을 직접 지탱해야 하는 이 기둥에는 철근을 충분히 투입하고, 특히 천장 접합부에는 철근을 칭칭 묶은 보강재를 넣어 기둥이 천장을 뚫고 올라갈 수 없도록 지지력을 높여야 한다. 이번에 하자가 발견된 아파트 주차장의 기둥에서는 설계나 시공 과정에서 이 보강 철근이 누락됐다. 이번 사달의 시발점이 된 인천 검단신도시 공공주택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도 `무량판 공법의 성공은 충분한 분량의 보강철근 투입에 달려있다'는 사전 경고를 무시한 결과였다.

지금 국제적 비난에 직면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사태 역시 다르지 않다. 잼버리를 유치했을 때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8월이라는 개최 시점과 그늘이라고는 한평도 없는 새만금 간척지라는 장소의 문제가 제기됐다. 무더위 대책이 행사의 성패를 가름할 관건이라는 경고가 일찌감치 제기됐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에 출석한 여가부장관은 걱정하지 말라며 준비가 완벽하게 진행중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장관의 큰소리는 국제적 망신살로 귀착됐다. 여권의 주장대로 5년 전부터 국제행사를 준비하며 행사장에 나무 한그루 심지못한 문재인 정부의 무능도 지적해야 하겠지만, 1년 전에 완벽을 장담해놓고 이 지경을 만든 현 정부도 책임을 미룰 자격이 없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도 처방을 하지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철근누락 사태와 대동소이 하다.

사실은 아파트 부실 시공이 지하 주차장 기둥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 진짜 문제다. 국토교통부 산하 분쟁조정위에 접수되는 아파트 하자 건수는 매년 4000건에 육박한다. 올해 들어서도 6월까지 1290건이 접수됐다고 한다. 대형 건설사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현대·대우·GS·롯데 등 대기업이 지은 아파트 하자가 13%를 차지한다. 입주민들이 아파트값이 떨어질까봐 웬만한 하자는 쉬쉬하는 관행을 고려할 때 실제 하자건수는 훨씬 많다고 봐야한다.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주범으로 건설산업의 이권 카르텔을 지목했다. 옳은 지적이다. 철근을 빼먹고 시공한 15개 공공주택단지 중 13곳의 설계사가 LH 퇴직자들을 임원으로 채용한 전관 업체이다. 카르텔 혁파 뿐 아니라 과도한 이윤 추구에서 비롯된 하도급·재하도급, 무리한 공기단축 등의 관행도 근절해야 한다. 공정률이 일정 수준 이상이 돼야 분양할 수 있는 후분양제 확대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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