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을 넘긴 김영환 충북지사에게 정치적 위기가 찾아왔다.
친일파 발언, 제천 산불 당시 술자리 참석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 상황의 심각도는 견줄 수 없을 수준이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전후의 행적과 재난 앞에서의 언행이 구설에 오르면서 여론의 혹독한 뭇매를 맞고 있다. 야권의 계속되는 공세까지 더하면서 김 지사는 어느덧 정치적 이슈를 불러온 장본인이 됐다.
김 지사는 국회의원 4선에 김대중 정부 때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다.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고 당선 후에는 특별고문까지 지냈다.
이 정도의 화려한 경력이라면 노련함으로 무장된 제법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각종 이슈를 불러오며 논란의 중심이 된 까닭은 뭘까.
먼저 근본적인 원인은 김 지사의 `돌출행동'에서 비롯됐다.
친일파 발언 등 앞선 구설을 차치하고 이번 오송 참사 이후 김 지사가 보여준 행동과 말은 분명 도민 정서와 부합하지 않는다.
`정치인 김영환'이라면 인지도 상승 등과 같은 반사이익으로 `정치적 리스크'를 감당할 순 있지만, `도백 김영환'으로서는 건지는 것 하나 없이 그저 상처로만 남는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판단 착오 등을 김 지사의 개인적 성향으로만 봐야 할까.
참모들의 역할 부재를 아프게 꼬집어 본다.
누구도 오송 지하차도에서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못한 터라 전날의 행적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날 `7월 15일'부터 김 지사의 언행은 분명 적절하지 못했다.
오송이 아닌 괴산행을 택한 것부터 판단 착오다. 상황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오송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했다는 것은 비서진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김 지사는 합동분향소에서 “내가 사고 현장에 일찍 갔어도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소신일까, 배짱일까. 그렇다면 `할 말은 다 한다'는 김 지사의 성향을 볼 때 `돌출발언'은 예측 가능했을 텐데 참모진들의 역할은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충북학사 서서울관에서 불거진 `특식' 논란도 참모진들의 어설픈 판단과 결정에서 비롯했다.
김 지사와 국회의원, 수행원들에게는 전복 내장 톳밥·아롱사태 전골·LA 돼지갈비찜·장어튀김 등 10가지 음식이 제공됐고 옆 칸 학생들의 식판에는 카레밥과 된장국, 단무지 등이 전부였다.
저녁 재료 원가만 따지면 갈비찜이 포함된 만찬은 2만8000원, 학생들의 카레밥은 2700원이었다. 10배 이상 차이가 난 셈이다. 21세기판 `반상'의 차별을 두는 것이냐는 등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이는 오롯이 김 지사의 몫이었다.
이번 참사와는 별개지만, 윤건영 충북도교육감의 사례를 보면 참모진의 정무적 판단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윤 교육감은 얼마 전 충북도교육 1급 정교사 자격연수 특강에서 “교사들은 예비살인자라고 인정하고 교사가 돼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파문이 확산하자 윤 교육감은 기자회견을 자처해 사과했다. 하루도 안 돼 논란은 깔끔히 가라앉았다. 배경에는 참모진들의 역할이 있었다고 한다.
한비자에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주막집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라는 뜻으로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참모를 잘못 기용하면 화를 당한다는 얘기다.
충북도는 이 고사성어가 주는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내부에서조차 비판적 시각이 나오는 상황에 도민 신뢰마저 밑바닥까지 추락하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