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맹주산(狗猛酒酸)
구맹주산(狗猛酒酸)
  • 하성진 기자
  • 승인 2023.08.0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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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하성진 부장(취재팀)
하성진 부장(취재팀)

 

취임 1년을 넘긴 김영환 충북지사에게 정치적 위기가 찾아왔다.

친일파 발언, 제천 산불 당시 술자리 참석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 상황의 심각도는 견줄 수 없을 수준이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전후의 행적과 재난 앞에서의 언행이 구설에 오르면서 여론의 혹독한 뭇매를 맞고 있다. 야권의 계속되는 공세까지 더하면서 김 지사는 어느덧 정치적 이슈를 불러온 장본인이 됐다.

김 지사는 국회의원 4선에 김대중 정부 때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다.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고 당선 후에는 특별고문까지 지냈다.

이 정도의 화려한 경력이라면 노련함으로 무장된 제법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각종 이슈를 불러오며 논란의 중심이 된 까닭은 뭘까.

먼저 근본적인 원인은 김 지사의 `돌출행동'에서 비롯됐다.

친일파 발언 등 앞선 구설을 차치하고 이번 오송 참사 이후 김 지사가 보여준 행동과 말은 분명 도민 정서와 부합하지 않는다.

`정치인 김영환'이라면 인지도 상승 등과 같은 반사이익으로 `정치적 리스크'를 감당할 순 있지만, `도백 김영환'으로서는 건지는 것 하나 없이 그저 상처로만 남는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판단 착오 등을 김 지사의 개인적 성향으로만 봐야 할까.

참모들의 역할 부재를 아프게 꼬집어 본다.

누구도 오송 지하차도에서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못한 터라 전날의 행적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날 `7월 15일'부터 김 지사의 언행은 분명 적절하지 못했다.

오송이 아닌 괴산행을 택한 것부터 판단 착오다. 상황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오송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했다는 것은 비서진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김 지사는 합동분향소에서 “내가 사고 현장에 일찍 갔어도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소신일까, 배짱일까. 그렇다면 `할 말은 다 한다'는 김 지사의 성향을 볼 때 `돌출발언'은 예측 가능했을 텐데 참모진들의 역할은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충북학사 서서울관에서 불거진 `특식' 논란도 참모진들의 어설픈 판단과 결정에서 비롯했다.

김 지사와 국회의원, 수행원들에게는 전복 내장 톳밥·아롱사태 전골·LA 돼지갈비찜·장어튀김 등 10가지 음식이 제공됐고 옆 칸 학생들의 식판에는 카레밥과 된장국, 단무지 등이 전부였다.

저녁 재료 원가만 따지면 갈비찜이 포함된 만찬은 2만8000원, 학생들의 카레밥은 2700원이었다. 10배 이상 차이가 난 셈이다. 21세기판 `반상'의 차별을 두는 것이냐는 등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이는 오롯이 김 지사의 몫이었다.

이번 참사와는 별개지만, 윤건영 충북도교육감의 사례를 보면 참모진의 정무적 판단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윤 교육감은 얼마 전 충북도교육 1급 정교사 자격연수 특강에서 “교사들은 예비살인자라고 인정하고 교사가 돼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파문이 확산하자 윤 교육감은 기자회견을 자처해 사과했다. 하루도 안 돼 논란은 깔끔히 가라앉았다. 배경에는 참모진들의 역할이 있었다고 한다.

한비자에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주막집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라는 뜻으로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참모를 잘못 기용하면 화를 당한다는 얘기다.

충북도는 이 고사성어가 주는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내부에서조차 비판적 시각이 나오는 상황에 도민 신뢰마저 밑바닥까지 추락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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