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주려면
울림을 주려면
  •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 승인 2023.08.02 19: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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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음악 방송에서 한 애청자가 보낸 사진을 청취자들에게 설명하며 진행자가 감탄을 자아낸다.“어쩜 이렇게 구도를 잘 잡았을까요. 오른쪽 끝에 언덕이 있고…이 언덕에 있는 식물들이 보리밭인가요? 잔디밭은 아닌 것 같은데, 보리밭이라면 그 보리밭의 파란색과 그 너머 하늘의 파란색, 그리고 언덕에 있는 나무의 파란색까지. 너무 아름다운 사진이네요…”

머릿속으로 사진을 상상하며 진행자의 설명을 따라가다가 그만 웃음이 나왔다. 보리밭과 하늘, 나무의 색깔을 모두 `파란색'이라는 단어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웃으면서 더 의도적으로 보리밭과 하늘 그리고 나무의 파란색을 구분하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다른 청취자들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다시 그 사진을 설명해 보려 하니 각기 다른 파란색을 설명할 마땅한 말들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방송을 들으면서 코드에 대해 배우던 수업 시간이 떠올랐다. 3화음에 대해서 배우던 시간이었다. 나는 메이저(Major)와 마이너(minor) 코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어그먼트(Augmented, 증3화음)와 디미니쉬(diminished, 감3화음) 그리고 써스포(sus4)라는 화음들이 더 있었다. 거기다 화음 하나를 더 쌓아서 7화음을 만들고, 또 더 쌓아서 텐션(tension)을 만들고. 정말 무궁무진한 화엄(華嚴)의 세계가 거기 있었다. “대개의 사람이 5가지 중에서 2가지 정도밖에는 모르죠. 그러면 거기에 맞는 곡밖에는 쓸 수가 없어요. 무지개가 다양한 빛깔을 가지고 있는데, 무지개 빛깔 중에 빨강과 노랑만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도화지에 무지개를 그릴 때 그 두 가지 색깔 밖에는 사용하지 못하겠죠.? 그러니 얼마나 단조롭겠어요?” 그러면서 교수님은 수업 중에 이렇게 덧붙이셨다. “많이 안다는 것은 자신의 곡을 그만큼 풍요롭게 쓸 줄 안다는 걸 의미해요.”

그렇다. 5가지 코드를 알고 있다고 해서 곡을 만들 때 5가지 코드를 모두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2가지 코드만으로도 얼마든지 멋진 곡을 만들 수도 있다. 오래전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가수가 김광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를 하염없이 좋아하게 되었다. 김광석의 노래는 코드 진행이 단순하다. 그런데도 그렇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복잡하고 화려해야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가끔씩 변화를 주고 싶을 때도 있다. 바로 그때 변화를 줄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삶의 빛깔이 달라지지 않을까? 두 가지 색깔만으로도 무지개를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 그렇지만, 더 많은 색깔로 무지개를 표현해야 할 땐 더 많은 색깔을 쓸 줄도 알아야 한다.

울림을 주려면 알아야 한다. 아직도 삶을 풍요롭게 할 방법을 배워야 할 게 널려 있다는 것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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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신 2023-08-03 14:06:58
울림을 주려면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