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의 쓸모
쓸모없는 것의 쓸모
  •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 승인 2023.07.27 16: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오래된 의자 몇 개를 버렸다. 20여 년 동안 가까이 두었던 물건을 버리는 일이 아쉬웠던지 몇 번인가 돌아서서 다시 보았다. 이 의자는 원래 식탁용이었는데 10여 년 전 식탁을 새로 구입하면서 서재에서 사용했다.

한동안은 서재에서 탁자용 의자로 소임을 하다, 언젠가부터는 한구석으로 밀려나 물건이나 쌓아 두곤 했다. 그러다 며칠 전 서재에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면서, 그 자리마저 내주어야 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니 버리는 게 당연한 일인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그 의자에는 오랫동안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며 나누어 온 살뜰한 정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니 구석으로 밀려나 쓸쓸하고 시무룩한 존재에게도 알 수 없는 불용(不用)의 가치가 있어서 돌아서는 발길을 어지럽혔나 보다.

사용하지 않으면서 내게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게 어디 그뿐이랴. 내 핸드폰 연락처에도 사용하지 않는 번호가 여러 개 있다. 오래전 연락이 끊긴 J의 전화번호도 있다. 거듭되는 불운을 이기지 못하다가 고향을 떠났고 그 후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그 친구로서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을 거고, 나도 이런저런 부담 때문에 굳이 연락하지 않았었다. 그러고 보니 부자연스러운 이유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거리를 멀게 했다. 가끔 연락처가 눈에 띌 때면, 어려울 때 많이 도와주지 못하고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한 것에 용서를 구하곤 한다.

서재에는 읽지 않는 책들이 있다. 법정스님이 쓴 `산에는 꽃이 피네' 시몬느 드 보봐르의 `아름다운 영상' 등 그저 책장에 꽂혀 내 허영심을 채워 주고 있는 책들이다. 새로운 책이 늘어나 책장이 비좁아지니, 오랫동안 읽지 않는 책은 버리는 게 맞다. 그런데도 버리지 못한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지만, 결국은 읽지 않을 책들이다.

그렇다고 읽지 않는 책이 내게 허영심만 채워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책은 이미 고인이 된 법정스님의 담담하고 평온한 모습에서 `무소유'를 떠오르게 하고, 보봐르의 책을 보면 계약 결혼했던 사르트르가 함께 보이고, `세상의 모든 여성이여! 그대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권리의 대부분은 보봐르 덕택이다.'라는 말이 상징하듯 여성운동을 했던 작가의 당찬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흔히 지금의 사용 가치만으로 물질의 가치를 재단하려 한다. 과거는 흘러간

것이고 현재와 미래만이 참다운 가치가 있다고도 한다. 물론 애써 지우고 싶은 과거의 흔적도 있다. 하지만 오래된 가구에서 지난 추억을 되살리고, 사용하지 않는 연락처에서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읽지 않는 책에서도 작가의 정신을 배우기도 한다.

우리는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시간은 미래로부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시간은 켜켜이 쌓아 놓은 과거와 현재의 퇴적물 위로 조금씩 쌓여가며, 곧 과거의 흔적으로 남게 될 것이다.

오래된 가구, 사용하지 않는 연락처, 보지 않는 책, 입지 않는 옷, 이루지 못한 꿈…, 언젠가는 버려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되 유용(有用)한 것들은 여전히 내 주위에 남아 있다. 그리고 나를 미소짓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