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하나 밝히며
등 하나 밝히며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3.07.25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오늘밤도 지새운다. 그분 생각을 오래오래 켜 두었다. 밖에는 비가 오는 모양이다. 빗방울이 바닥에 사정없이 내려처지는 소리로 요란하다. 한바탕 밤의 고요를 산산이 깨고는 성에 찼는지 조용해졌다. 그러다 다시 채찍의 빗소리로 변한다. 걷잡을 수 없는 비의 음률은 진혼곡이 되어 흐느끼고 있다.

일어나 마음 전에 촛불을 올린다. 인연의 끈이 바람에 하르르 나부낀다. 한 영혼을 위한 기도등을 준비해야겠다. 한 수, 한 수 하얀 꽃잎을 붙이는 손끝이 떨린다. 끝이 없는 구도의 길이었던 삶이었다. 입적에 들어 영영 가시는 길을 밝히는 연민의 등. 부디 가야 할 길을 잃지 않고 잘 찾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는 등을 밝힌다.

내게 오던 스님의 법문이 멈춘 것도 뒤늦게 알았다. 그 사이에 아팠다는 것을, 더는 뵙지 못한다는 사실을. 내게 내내 건강하라는 마지막 메시지가 남아있다. 그즈음이면 자신의 건강에 이상 신호를 알았을 텐데 어찌 토굴에 계셨는지. 알고도 마지막을 혼자 오롯이 감당한 것인지. 그러면서도 불자들의 건강을 챙기고 있었던 말인가. 가슴이 먹먹해 온다.

어느 날, 늦은 밤에 전화를 받았다. 스님이라며 남편과 모텔에 와 있다는 것이다. 그이가 술이 많이 취해서 도저히 집에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사내들끼리 동침한들 어떠랴. 그러나 이 생뚱한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스님이 함께 술을 마시고 모텔을 갔다는 말에 비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잠깐이었다. 나의 말투가 퉁명스러워졌다.

지금 거기로 간다고 장소를 일러 달랬다. 쩔쩔매는 스님에게서 전화를 뺏은 그이가 꼬부라지는 소리를 했다. 자고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뚝 끊었다. 다음날 그이의 말을 듣고 나의 섣부른 오해임을 알았다. 신도들의 모임에 동석(同席)을 한 새로 온 스님이라는 것이다. 초면에 그이의 술시중을 다 드느라 고생했다고 미안해했다.

며칠 후 초파일 날 연등을 달고 있는 내게 “보살님, 인사는 터야지요. 우린 구면이죠.” 보자마자 SNS에서 널리 알려진 혜민스님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님과 처음 알았다. 가끔 일이 있을 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법문을 보내오셨다. 거기에 보내는 짧은 답장이 도반의 관계가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멀리 가게 된 서운함이 커 적은 기도비를 보내드리는 것으로 아쉬움을 이었다. 어느 조그만 절에서 토굴로 옮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띄엄띄엄 새벽 예불을 마친 법문이 올 때마다 잘 계신다는 안부로 알았다.

혼자 있는 토굴이 오죽했으랴. 무엇인들 좋은 환경일 리가 만무다. 문득 생각이 나서 카톡을 열던 손에 힘이 빠져나간다. 부고문자 보내기가 떠 있다. 그이가 아픈 바람에 잊고 지내는 동안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분이 된 것이다. 나의 힘듦을 털어놓고 위로받으려 했는데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는다.

촛불이 다 타고 남은 촛농이 나를 보는 듯하다. 뵐 때마다 늘 안쓰러워 마음이 갔다. 무너져버린 이 하얀 그리움. 아픈 연민이 시리다. 이 또한 내 몫이다. 모든 것은 헤어지고 변하며 사라지기 마련이다. 있던 것은 지나가고 없던 것은 돌아온다던 스님. 안부를 전할 수 있는 도반이 있어 좋다 했던 스님. 마음을 다해 넋을 위로해 드리고 싶다.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손을 들어 배웅한다. 달빛도 길을 낸다. 영가등이 환하게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스님, 이제 모든 고통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가십시오.'

극락왕생. 선 중화스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