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포의 노래
추포의 노래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07.2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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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늙음이다.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고 모든 생명체, 나아가 모든 존재들은 늙음을 겪지 않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늙음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늙음을 재촉하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늙음은 어차피 피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을 정겹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라 유머감각이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늙음을 유머로써 정겹게 받아들인 현인이었다.

추포가(秋浦歌)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흰 머리 길이가 삼천 장인데
緣愁似箇長(연수사개장) 근심으로 인해 이렇게 자랐다네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알 수가 없다네 맑은 거울 속 모습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어 왔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시간이 유일할 것이다.

시인이 젊을 적 한때 도교에 심취해 불로장생을 추구한 바도 있었지만 흐르는 세월을 피할 방도는 없었으리라.

시인이 생존했던 7세기의 나이로 60세는 완전히 노년에 해당한다. 이 시를 쓸 당시 시인은 60세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울이 흔치 않았던 시기인지라 자신의 늙은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사물이 훤히 잘 보이는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게 되었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한마디로 노인 그 자체였다. 자신의 늙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 시인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참으로 한탄스러웠겠지만, 시인은 이 한탄을 유머로 승화시킬 줄 아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에 여산(廬山)의 폭포 길이를 삼천 척(尺)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시인이 이번에는 자신의 수염 길이를 그 열 배인 삼천 장(丈)으로 너스레의 강도를 대폭 높였다. 수염의 길이를 말도 안 되게 과장하여 자신의 늙음을 유머로 승화시킨 것이다.

수염이 이렇게도 자란 것은 근심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장면에서 시인의 근심은 하나의 유머 소재로 쓰여 또 다른 유머를 만들어 낸다. 근심을 먹고 삼천 장(丈)이나 자란 머리카락이라니 대단한 유머가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연타의 유머 펀치를 날린다. 거울 속 그것도 명품 거울 속에 또렷이 비친 것은 흰 머리가 아니다. 그것은 인생도처를 떠돌다 어디서 얻었는지 모르는 가을 서리였던 것이다.

늙음은 피할 수 없다. 그에 대한 한탄도 인생에 대한 무상감도 피하기 쉽지 않다. 누구나 늙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한탄과 무상감을 유머로 승화하는 것이야말로 늙음을 즐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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