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참사는 명백한 관재(官災)
오송 참사는 명백한 관재(官災)
  • 하성진 부장(취재팀)
  • 승인 2023.07.23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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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명백한 인재(人災)가 불러온 결과다. 참사 전 곳곳에서 보내온 시그널(signal)이 재난관리 주체인 행정당국의 안일한 대처와 늑장으로 철저히 뭉개졌다. 이런 탓에 인재가 아닌 관재(官災)라는 말이 적확한 표현이다.

적극성을 발휘할 것도 없었다. 그저 만들어진 매뉴얼에 따라 재난 관련 대응 절차를 밟기만 했어도 무고한 시민 14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먼저 이번 참사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미호강 범람을 막지 못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의 허술한 임시 제방 공사를 뼈아프게 꼬집고 싶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국회의원실이 공개한 사고 당일(15일) 동영상을 보면 행복청의 책임은 부정할 수 없다.

오전 7시1분쯤 오송읍 궁평1리 주민인 박종혁씨(63)가 휴대전화로 직접 촬영한 15초짜리 동영상을 보면 미호강 수위가 임시제방 턱밑까지 차오르고 인부 6명이 20~30m 구간에 서서 삽을 들고 흙을 퍼 포대에 담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굴삭기 같은 중장비는 보이지 않았다.

행복청은 사고 당일 오전부터 굴삭기를 이용, 제방 보강 공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 의원은 “금강홍수통제소가 심각 단계로 발령을 낼 때가 9.2m인데 당시 미호천교 수위는 이를 넘어서 9.47m였다”며 “큰 참사가 일어날 것을 생각하면 수백 명이 수많은 장비와 함께 넘치지 않게 대비해야 했는데 영상을 보면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다”고 지적했다.

충북도와 청주시의 대처도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국민 눈높이에서 바라볼 때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참사가 발생한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포함된 508번 지방도의 관리주체는 충북도이다. 충북도가 적절한 시점에 지하차도의 차량 통행을 통제했다면 이번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는 사고의 원인이 된 미호강 제방 붕괴 전까지는 지하차도를 통제할 정도의 징후가 없었다며 책임 회피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청주시도 마찬가지다. 금강홍수통제소는 미호강이 범람 위기에 다다른 오전 6시34분 해당 지역 관할청인 흥덕구 건설과에 전화를 걸어 주변 주민통제와 대피에 나설 것을 경고했다. 사고 발생 2시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지하차도가 속한 508번 지방도는 충북도 관할이라는 이유로 관심 두지 않았고, 위험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다.

시는 사고 발생 20분 뒤인 오전 9시가 돼서야 오송읍으로부터 연락받고 지하차도가 침수된 사실을 알았다. 그때야 충북도에 연락했다.

재난 앞에서 가장 먼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 경찰도 이번엔 제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경찰 상황실에는 오전 7시58분쯤 “궁평 지하차도 차량 통행을 막아달라”는 익명의 신고가 접수됐다.

추후 이 신고자는 오송~청주(2구간) 도로확장공사 현장의 감리단장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출동 지시를 받은 관할 파출소 직원들은 궁평1지하차도와 쌍청리교차로 등 엉뚱한 지역에 배치됐다.

경찰에 이어 검찰까지 수사본부를 꾸려 강도높은 조사에 나섰다. 공사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행복청, 교통 통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도 책임만 떠넘기고 있는 충북도, 청주시, 경찰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담당 공무원에게만 책임을 넘기는 꼬리자르기식 수사는 `쌍팔년도' 때나 가능했던 일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번 참사의 정확한 경위를 밝히고 책임있는 이들은 열외없이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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